서모세 목사님/양사라 원장님 말씀

성경을 알기 쉽고도 깊이있게 배워보는 코너입니다. 영적 깊이가 더해지는 소중한 시간이되길 바랍니다. 아울러 말씀에 제시된 환상 등은 원장님께서 개인적으로 받으신 내용으로 다른 성도분들께는 다른 이미지로 계시해주실 수 있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제목 포도나무와 가지 (요 15:1-11)
작성자 기쁨
작성일자 2011-03-31
조회수 4178



포도나무와 가지 (요 15:1-1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1.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목적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가 결국엔 밖에 버려지고, 사람들은 그것을 불사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포도나무와 가지에 대한 말씀을 듣는 대상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라, 우선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구원의 첫째 조건이며 교회 역시 중요합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에서 보듯 성도의 삶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은 바로 ‘열매 맺음’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직분이나 신앙의 연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열매 맺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면서부터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는 성립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지로 붙은 것 자체로, ‘우선 나는 구원 받았으니 됐다’는 식으로 만족하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만세 전에 택하신 까닭은 우리만 잘 먹고 잘 살라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열매를 많이 맺게 하시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요 15:16).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만약 너희가 이 포도나무의 가지라고 하면서도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면 결국 잘려져 나갈 것이다’라고 엄중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곧 예수님을 믿지만 실제 삶에서 주님의 뜻에 맞는 일을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다면, 비참하게 버려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시대에 얼마나 많은 십자가가 있습니까? 조금만 높은 지대에 올라가면 중국집이나 미용실 보다 교회의 십자가들이 가장 많이 보입니다. 하지만 정녕 이 시대의 교회가 주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이 땅에 풍성하게 내놓았느냐, 또 과연 주님이 명하신 대로 빛과 소금의 삶을 교인들이 제대로 살고 있느냐고 자문한다면, 과연 우리 스스로 단번에 ‘그렇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런지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주셨음은 한마디로 엄청난 사건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삶 속에서 단지 ‘조금’ 훌륭한 사람으로 살면서 적당히 열매를 맺고 살라고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자, 포도나무의 뿌리가 얼마나 깊이 가 닿아있는지 아십니까? 그 뿌리가 미치는 최종점은 성부 아버지가 계신 하늘나라이고, 바로 거기에서부터 나무가 자라났습니다. 이 나무는 너무나도 거대해서 실로 우리 인간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렇기에 때문에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산다는 것의 의미는 이미 나 하나의 경건하고 바른 삶의 수준을 넘어서 있습니다. 나아가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와 나는 하나’가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과 일체가 되었다는 의미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하늘나라로부터 공급을 받아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헌데 이 시대의 기독교인들은 이 놀랍고도 놀라운 자화상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출석하면서 내 삶이 조금 펴지고, 조금 복 받으면 그 즉시 현실에 안주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신앙의 기준을 인간사의 틀에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기준으로 본다면, 성도들의 삶은 이 세상 사람들의 것과 본질적으로 차별을 보여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리하여 이 세상 사람들이 전혀 상상해 본 적도 없었던, 아니 우리 자신조차 놀랄만한 축복과 능력이 예수님으로 인하여 삶에서 현현하게 나타나는 것이 정상입니다.

물론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의 여러 가지 덕성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도 우리에게서 향기롭게 나와서 모든 곳에서 흘러나와야 합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세상 사람들의 눈에 ‘아니 어떻게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하면서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의 복과 치유, 열매가 우리 믿는 자들에게서 나와야 합니다.

이 모든 열매는 ‘나의 능력’으로는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지로서 붙어 있는 포도나무가 바로 성부 아버지, 하늘나라로부터 시작해서 지상까지 뻗어져 나온 그 나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뿌리에 의지하여 삶의 모든 부분에서 주님의 뜻대로 준행하고 살기만 한다면, 그로부터 주님의 어마어마한 능력이 우리 삶에서 열매로 맺혀질 것입니다.



2. 가지의 역할에 충실하라



하나의 예화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중국에 한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인력도 받쳐주지 않고, 물질적 자원도 모자라는데, 여기에 마귀의 공격까지 받아서 몹시 힘든 상황에 처해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선교사의 여동생이 이런 편지를 보냈습니다. 편지에는 ‘오빠, 저는 잘 모르겠는데, 기도 중에 주님께서 이 말씀을 오빠에게 보내길 원하시네요’라며 이 요한복음 15장의 말씀이 쓰여 있더랍니다. 이 선교사가 말씀을 읽는 그 순간 전광석화처럼 깨달음이 왔습니다. ‘그렇다. 나는 지금까지 내 자신이 포도나무가 되려고 했구나. 나는 그저 가지일 뿐이며, 포도나무에 붙어만 있기만 하면 될 것을! 그것만이 내 역할인데, 오히려 나 스스로 포도나무의 구실을 하려고 했구나’

우리가 주님 일을 한다고 아무리 애를 써도 현실이 무너지는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 원인을 파고 들어가면, ‘내가 했기 때문’인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사령부로 계시지 않은 채, 내가 머리가 되어 계획하고 실행하려다보니 망하고 마는 경우입니다.

이 예화에서 하나님께서는 이 선교사에게 이 중요한 원칙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모든 것’을 그분에게 의지하고 따르는 포도나무의 가지 역할입니다. 마치 어린이가 어머니의 손을 놓으면 죽는다는 그 심정으로 그분께 매달리기를 바라십니다. 자, 이 선교사님도 깨달은 그 순간부터 모든 것을 내려놓고 기도하기 시작하였고, 그 후로는 당연히 선교지에서 활동하는 모든 부분에서 열매가 맺혀갔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포도나무도 아니고 농부도 아닙니다. 그저 가지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예수님께서 공급해주시는 수액을 잘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사실 이렇게 붙어있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끊임없이 말씀을 듣고, 전심으로 기도하며, 주님 뒤를 따라가기만 한다면 이 모든 과정을 통하여 넉넉하게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은 주님 이십니다.

우리 자신은 포도나무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힘만으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갈 힘조차도 없습니다. 또 내가 무엇을 계획해서 그 계획을 스스로 척척 실행해나가는 것도 아니며, 내가 모든 것을 이룰 수도 없습니다. 예레미아 33장 2-3절 말씀을 보면, 계획하시고 성취 하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다 주님께서 하십니다. 우리는 가지의 본분을 지키고, 오직 포도나무에 제대로 붙어서 맡겨진 그 역할만 충실히 한다면, 이 분께서 다 일하시고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시편 37장 5장에도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늘나라에 뿌리를 내린 포도나무와 일체가 되어 있는 한에서만 열매도 맺을 수 있습니다. 이 자체만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비전을 하나님 안에서 제대로 찾을 수 있습니다.



3. 마귀를 쫓아내고, 본연의 자화상을 되찾아라



그런데 이때 마귀는 우리의 자화상을 흐려놓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우리가 그저 지상에 머문 인간으로만 살게끔, 한정적인 소망만을 바라고 사는 사람에 머물도록 우리의 비전을 깎아 내리고, 낙심을 던져줍니다. 그들은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본래의 자화상을 잃어버리게끔 수없이 공격해 들어옵니다.

마귀의 공격은 상당히 구체적이고 논리적으로 그럴 듯 합니다. 마치 내 자신의 생각처럼 위장하여 ‘성경은 2천 년 전의 일이야’ 혹은 ‘그 메시지는 너에게 준 것이 아니라 똑똑한 사람에게만 준 거야, 네 현재 모습을 봐, 아직도 회복이 안 되었잖아’ 라는 식으로 우리를 속이려 듭니다. 만약 우리가 끊임없이 기도와 말씀으로 영양분을 공급받지 않는다면, 이러한 마귀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어느새 우리 자신도 ‘그래, 안되었어. 나는 안 되나 봐’ 하면서 그만 주저앉고 맙니다.


하지만 이러한 공격을 의식하자마자 오히려 ‘그래 맞다. 내 개인으로는 아무 것도 못한다. 나 자신으로는 하늘나라의 비밀도 알 수 없고 귀신을 쫓아낼 수도 없다. 그러나 나는 포도나무의 가지가 아닌가!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하늘나라의 놀라운 영양분을 공급받아서 나도 하늘의 비밀을 알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주님의 사업에 기여 할 수 있다’ 라고 끊임없이 마음을 다잡아야 합니다. 우리는 진리의 깨달음을 매 순간 되새기며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고, 말씀 속에서 우리 자화상을 찾아야 합니다.

내가 현재 절망에 빠져 있다면, 내 옆에 계신 주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이제 너는 세상 사람이 아니다. 너는 나와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너는 나와 하나가 되었고, 나의 가족이며, 나로부터 모든 영양분을 공급받아서 전혀 다르게 살아갈 것이다. 전에는 네가 사주팔자나 저주 안에서 살아야 했지만, 그것들은 다 떠났다. 너는 만복의 근원인 나로부터 축복을 받기 때문이다’라고 힘을 북돋아 주시지 않을까요? 우리는 각자가 말씀을 믿고, 저주가 떠난 것을 바로 ‘내 비전’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도 의심이 된다면 고린도후서 8장 9절을 보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께서 가난하게 사셨던 까닭은, 그분께서 친히 가난의 저주를 지고 가심으로써 우리를 부요하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현재 가난하다면, 이를 성경에 비추어보아 ‘이 상태는 내 본래 모습에 맞지 않는 것이구나. 예수님께서 가난을 지고 가셨으므로 나는 포도나무의 가지로서 가난하게 살면 안 되는 것이구나. 나는 복의 근원으로 살아야 하는 사람이구나’ 하면서 뚜렷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깨달음을 믿고, 큰 소리로 ‘가난아 떠날지어다’하면서 희망의 선포를 하십시오.


이렇게 들어도 ‘과연 그런다고 될 일인가?’ 하면서 의심이 사그라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말 한마디는 언뜻 생각하기에 참 별 것 아닌 것 같습니다. 게다가 내 현실이 답답한 처지에 ‘에이.아무리 말씀에 있다고 해도 현실과 맞겠어?’하면서 말씀 선포의 힘까지도 의심이 됩니다.

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말 한마디를 하는 것, 듣는 것 모든 것이 신경계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부정적인 말을 자꾸 입 밖에 내고, 보고 듣는다면 그때마다 우리 몸이 실제로 쪼그라듭니다. 말의 위력에 대해 우리보다 마귀가 더 잘 알고 있기에, 그들은 우선 끊임없이 ‘할 수 없다, 넌 안 된다, 과연 될까?’하는 부정적인 말에 우리를 집착하게 만듭니다. 여러분 혹시 ‘나는 복을 받을 수 없다, 나는 죄도 용서받지 못한 것 같다. 다른 사람은 귀신을 쫓고 능력을 행하지만 나는 안 될 것 같다’는 마음이 드실 때가 있습니까? 그것은 100퍼센트 마귀가 주는 마음입니다. 그 즉시 온 심령을 주님을 향해 돌리십시오.


주님께서는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혹 내가 주님을 택했다면, 내 자격요건이 안되어서 복을 못 받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요한복음 15장 16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먼저 나를 택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또한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를 사랑해서 내 외아들을 내려 보냈단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요일 4:9)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나의 현재 조건을 가지고 따질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마귀가 자꾸 나의 현실을 바라보게 한다면, 말씀을 무기로 담대하게 ‘마귀는 나의 부족한 조건을 가지고 달려들지만, 나는 원래부터 조건으로 치자면 아무 것도 내세울 게 없는 사람이다. 허나 주님께서 이러한 나를 택하셨다’하며 마귀의 공격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긍정적인 말을 선포할 때, 결국 마귀는 떠나게 되어 있습니다.

잠언서 18장 21절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고 있습니다. 우리가 ‘승리한다, 할 수 있다, 마귀는 떠난다, 저주야 떠나라’할 때, 이 선포 하나하나가 영계를 뚫고 들어갑니다. 말 한마디를 선포할 때 얼마나 많은 영적 권능이 나타나고 천군천사가 임하는지는 영적 사역을 해 나가면서 더욱 깊이 알게 됩니다.



4. 순종으로 주님께 일치하는 신앙



오늘 본문 7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일치를 이룬 이상, 구하는 그대로 이루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백지수표를 주신 것입니다. 단 정욕적으로 구하면 안 됩니다. 하늘나라에 합당치 못한 기도를 주님께서 들어 주실 리는 없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구하는 것은 무엇이나 주님께서 응답해주십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창조된 목적 자체가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찬양하고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시 105).

주님은 우리를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로 쓰시길 원합니다. 그리고 이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기 위한 전제는 우리가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여야 합니다. 그 관계가 항구하다면 능력이란 나오지 자연히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이시간도 예수님께서는 영원에서부터 동일하신 영으로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영양분을 공급해 주십니다. 행하시는 분은 이 분이지 우리의 육이 아니며, 우리는 다만 믿음으로 선포할 따름입니다.

영적 사역을 하다보면 선포의 말 한마디조차도 이 분께서 주신 영감 그대로 나가게 됩니다. 제가 집회 때 손수건 사역, 그림자 사역, 생수 사역 등 여러 가지 사역을 하지만, 그 하나하나도 제 맘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영감을 주시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그 사역의 도구로 제가 쓰이는 것뿐입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가 이 땅에서 주님과 하나 되어, 그 포도나무에 잘 붙어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이 역시 오늘 본문 말씀에 이어져 있습니다. 10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즉 아버지 사랑 안에 거하는 길은 바로 순종입니다. 순종하는 나의 행위가 포도나무에 붙어서 영양을 공급받는 방법입니다. 만약 입으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결국 자기 유익을 위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이는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되시고, 내 삶을 통제할 전권을 가지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중심이 되어 아버지를 찾고 내가 필요한 것만 하나님께 요구하는 태도입니다.

이와 반대로 신앙의 본질로 들어가면 갈수록,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자기의 작은 자아를 넘어선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해서 복을 받았는지 그 순서를 가만히 보면, 그는 주님께서 내신 마지막 카드 즉 ‘네 아들 이삭을 바쳐라’라는 명령에 순종을 하였기 때문에 의롭다 칭함을 받고, 창대한 복을 약속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리 하셨듯, 나에게도 ‘내가 너에게 준 선물 때문이 아니라, 정말로 네가 나를 사랑하고 있느냐’를 시험하시는 분입니다. 도저히 내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명령 앞에서도 진짜 우리가 복종을 하느냐 아니냐를 주님께서는 분명히 보고 계십니다.


저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처럼 주님의 종으로 단에 서서 설교를 하고, 놀라운 주님의 임재가 드러나는 권능 사역을 하면서도, 저 역시 성경 말씀을 그대로 준행하는 것이 정말로 어렵다는 걸 늘 느낍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결단을 하고 매 순간 실천 해보십시오. 실제로 하루에도 수십 번씩 우리 모두는 ‘말씀을 따를까, 세상을 따를까’ 혹은 ‘말씀을 따를까, 이 상황은 위험하니 환경을 따라야 하지 않나’ 하면서 수없이 전쟁을 치룹니다.

이 선택의 순간마다 성경 말씀을 잡으십시오. 만약 내가 현재 주님의 응답을 직접 못 받고 있다면, 성경이 곧 나에게 주어지는 예언입니다. 또 답답한 문제가 있을 때 예언 은사자에게 예언만 받아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서 주님이 기뻐할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서 그대로 따르면 주님께서 내 인생을 책임지시 시작하십니다.


또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해서 그 즉시 마귀와 대적하는 힘을 갖출 수는 없습니다. 거듭남은 영적으로 새로 태어난 것과 똑같습니다. 그러므로 어린아이가 처음엔 일어나고, 또 걸음마를 힘겹게 하다가, 나중에 뛸 수 있듯 우리 신앙의 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는 작은 데에서부터 순종하기를 바라시면서 영적 훈련을 친히 이끄시며, 아픔과 고통마저도 우리의 유익을 위해 허락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계속해서 성장하는데, 이 모든 과정을 겪어내면서 영의 세계를 온전히 알아 완전히 성장된 사람이 바로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사람입니다. “내 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의 신앙은 이제 딱딱하고 견고하고 쓰디 쓴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신앙입니다.


물론 이러한 신앙에 도달하는 것도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저마다 환경에 짓눌리고, 때로는 주님을 배반하기도 하고, 절망에 주저앉기도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오늘과 내일이 다르고, 이달과 내달이 다르게 성장해 나가는 일입니다. 이렇게 나날이 다르게 살고, 그 삶으로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내 자신이 주님 앞에 설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를 채찍질 하면서 주님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또 신앙을 몇 년 했느냐, 직분이 무엇이냐에 맞출 것이 아니라, 현재 내 가지에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가 맺히고 있느냐를 보아야 합니다.



6. 십자가를 짊어진 제자의 삶이 열매를 맺는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우리에게 열매를 맺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는 날, 주님께서는 우리가 지상에서 맺은 열매를 보여주실 것입니다.

결국 ‘포도나무의 가지로서 열매 맺는 삶’이란 본질적으로 나를 죽이는 신앙생활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0절 말씀처럼 나를 죽여야 예수님의 생명이 나에게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주님의 제자라고 하면서도, 또 십자가를 진다고 하면서도 어느새 세상의 부와 명예를 따르고 마는 인간의 나약함을 목격합니다. 허나 주님께서는 우리가 자기의 안위를 위한 욕망을 죽이고, 오로지 주님의 향기를 낼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하길 바라십니다. 영적 사역이 중요한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은 ‘대체 이 현대 사회에서 무슨 영적 능력을 따지냐’며 신비주의에 빠지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하지만 그 능력이 어디에서 오는 것이겠습니까? 우리 자신이 없어진 그 자리에서 우리 안을 장악하신 주님의 능력이 아닙니까? 주님의 향기와 열매, 또 영적 능력은 분리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체를 정녕 다 비우고, 우리 영혼 전체를 주님께서 차지하실 수 있게 만들어드릴 때, 그때 맺혀지는 열매는 실로 세상에서 볼 수 없는 놀라운 것들입니다.


‘육 을 죽이고 십자가를 짊어 짐’은 정말 힘듭니다. 사도 바울도 ‘아하 곤고하다’는 고백을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훌륭한 분도 자신의 육적인 본능이 튀어나올 때 그 죄와 약함을 힘겹게 느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주님의 제자로 부름 받은 이상, 우리는 주님의 열매를 맺어야 할 사명을 받았습니다.그러므로 이 짧고 풀잎 같은 인생에서 자신의 몫을 다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야겠습니다.

마귀는 우리 인생이 한정 없이 계속될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고, 이 세상이 단지 장막일 뿐이라는 진실을 망각하게 합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잠시 살다 갈 뿐입니다. 그렇기에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에는 하나님을 담을 수가 없습니다.

초 보신앙에서는 주님께서 그저 눈 지그시 감고 ‘그래 어린아이의 신앙이니 네 희생이 없이도 복을 준다’ 하십니다. 하지만 정작 신앙의 본질은 내 자신이 예수님의 능력과 예수님의 향기를 내는 통로로 온전히 쓰임 받는 삶이어야 합니다. 내가 가는 곳마다 어둠이 쪼개지고, 귀신이 소리를 지르며 떠나고 내가 작은 예수로서 만복의 근원이 되어야 합니다.

마귀는 ‘그래 주님을 믿되, 너 하나만 챙겨라’면서 우리가 평생 작은 틀에 머물러 있게 하려 합니다. 그들은 나를 통해 예수님의 능력이 나오지 못하는 데 온 힘을 다합니다. 왜냐면 내가 놀라운 영의 사람으로 바뀐다면, 그들이 쫓겨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도 읽고, 교회도 짓고, 직분도 받아라. 단 참 빛을 발하는 자만 되지 마라’면서 우리의 신앙을 협소하게 만듭니다.


우리 영성원은 참 빛을 발하는 용사를 키워내는 훈련학교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영이 열리고, 권능을 받아 내 삶을 짓누르는 마귀를 물리치고, 나아가 다른 사람의 삶에도 환한 등불이 되어주는 사람으로 바뀌는 것이 목적입니다. 우리가 나 하나의 작은 신앙에 만족한다면, 결코 다른 사람을 구할 수가 없습니다. 이 시대에 수많은 교회가 있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자면 영혼들이 갈급해서 죽어가는 것이 현실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당신 자녀들의 갈급함과 아픔에 울고 계십니다. 주님의 아픔이 내 아픔이고, 교회가 잘못되어 가는 것이 내 아픔으로 느껴지는 자가 바로 ‘주님과 하나 된’ 사람입니다.

여러분 ‘작은 신앙’에 결코 만족하지 맙시다. 이 땅의 교회를 위해 눈물이 나고, ‘어떻게 하면 이 교회를 다시 회복할까’에 늘 고심하는 사람, 이 시대 영적인 회복을 위해 전심으로 달려가는 사람, 이 사람을 주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예언하고 귀신 쫓음도 하나의 도구적인 부분입니다. 주님과 진짜 하나가 된 사람은 기도를 해도 저 하나의 인생, 자기 가족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나라를 위해 걱정하고 기도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마태복음 6장33절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주님 나라를 먼저 구하는 사람에게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가 맺혀나갈 줄로 믿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성도 여러분도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 순종과 십자가를 지는 삶으로 많은 열매를 맺으시는 가지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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