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모세 목사님/양사라 원장님 말씀

성경을 알기 쉽고도 깊이있게 배워보는 코너입니다. 영적 깊이가 더해지는 소중한 시간이되길 바랍니다. 아울러 말씀에 제시된 환상 등은 원장님께서 개인적으로 받으신 내용으로 다른 성도분들께는 다른 이미지로 계시해주실 수 있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제목 예수님과 바알세불 (마 12:22-29)
작성자 기쁨
작성일자 2011-02-20
조회수 3692



예수님과 바알세불 (마 12:22-29)





그 때에 귀신 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며 보게 된지라

무리가 다 놀라 이르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하니

바리새인들은 듣고 이르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만일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어떻게 그의 나라가 서겠느냐

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되리라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1. 안식일에 병을 고치신 예수님





오늘 본문 말씀이 있기 직전,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손이 마르고 곱은 자를 고쳐 주신 사화가 나옵니다. 말씀 하나로 마른 손이 펴지는 것은 완전히 기적 사역입니다. 그런데 이때 주변에 있던 바리새인들의 반응이란 참 이상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사람의 곱은 손이 즉시 성하게 되는 것을 목격했다면, 이 놀라운 은혜에 감동하고 박수치는 게 당연 하지 않을까요? 헌데 바리새인들은 오히려 시기 질투에 휩싸여서 ‘예수님을 어떻게 죽일까’하고 의논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사역하시는 것을 두고 바리새인들이 얼마나 트집을 잡았는지는 성경 곳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보다 ‘안식일 율법을 어겼느냐 아니냐’를 따졌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고자 일부러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냐?’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마 12:11-12) 하시고는 손마른 자를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한결 같았습니다. 병들고 귀신들린 자가 가엾어서 그들을 낫게 하시고, 여기서 방해와 헐뜯음이 있으면 다른 곳으로 가셨습니다. 가는 곳곳마다 군중들이 몰려와서 예수님께 치유를 받으려고 하면, 이들을 긍휼히 보시고 모두 고쳐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가만히 눈을 감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무엇을 하셨는지 마음으로 그려 봅시다. 사람들이 예수님이 계신 곳이면 어디든지 용케 찾아오기가 대단했고, 또 병마에 짓눌린 사람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이나 호숫가, 군중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는 하늘나라 복음을 선포하셨고 동시에 병든 사람들을 끊임없이 고치시고 또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이러한 상황 중의 하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때에’는 이렇게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하면 넘어뜨릴까 노리고 있었고, 군중들은 저마다 예수님께로 물밀듯이 몰려왔던 ‘그때에’를 말합니다.

그 때에 귀신 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며 보게 된지라

무리가 다 놀라 이르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하니



예수님께서 귀신들려서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고쳐주시니, 사람들은 모두 다 놀라면서 ‘다윗의 자손이시다!’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의 자손은 곧 ‘이 사람이 메시야가 아니냐’ 라는 말과 똑같습니다. 구약에서 이미 ‘메시아는 다윗의 자손에서 나온다’고 계시되어 있는 것을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 알고 있었지요.

그런데 지도자들이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안식일 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또다시 예수님을 공격하는데, 이렇게 율법의 잣대로써 사람에게 흠을 내려고 작정한다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눈’, 영의 눈으로 볼 때는 주님의 나라가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답답하셨을까요. 저들의 눈으로 분명히 예수님 하시는 일을 보았는데도 계속해서 시비를 걸고 있으니 말입니다. 양들은 예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반면 지도자들이 오히려 하나님의 사역을 거부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결국 이들은 예수님께서 마귀 두목 바알세불의 힘으로 귀신을 쫓아낸다고까지 말합니다.

바리새인들은 듣고 이르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이러한 언사들의 바닥에는 시기 질투가 깔려 있습니다. 예수님의 놀라운 사역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이 예수님께로 온통 이끌리기 때문에, 지도자들의 자존심이 상해버립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카리스마’라는 말은 원래 ‘은사’를 뜻합니다. 카리스마에는 사람을 끄는 힘이 있기 마련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으로부터 부어지는 힘이기 때문이지요.

즉 바리새인 자신들은 이러한 일들은 할 수 없는데, 예수님께서 아주 권위 있는 말씀으로 병을 고치고 마귀를 쫓아내자 이들의 뱃속에서는 시기가 들끓어서 결국 예수님을 모함합니다. 참 무서운 발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힘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면서도, 그것을 어떻게든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본문 27절을 보면 그때도 영적 은사자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처럼 온전하지는 않았지만,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귀신을 쫓아냈던 모양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라고 반문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너희들도 마귀를 쫓아내지 않느냐. 그렇다면 나도 그렇다. 이러한 일들의 증인이 바로 너희이지 않느냐’고 말씀하신 것과 다름없습니다.





2. 이 시대에도 똑같이 행해야 할 영적 사역





사실 영적 사역을 하다보면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당하셨던 그러한 핍박들을 똑같이 겪게 됩니다. 주님의 권능이 드러나는 사역 앞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다고 기뻐하는 것이 정상이련만, 오히려 시기 하는 사람들이 이 시대에도 똑같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평범하게 신앙생활 할 때는 모두가 어울려서 잘 지냈는데, 주님께 사명을 받고 훈련의 길로 들어서고 또 은사를 받아서 영적 사역을 하기 시작하면 곳곳에서 억울한 소리를 듣게 됩니다. 나는 주님을 만나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님 일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상해. 유별나. 이단인 것 같다’는 소리를 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러한 반응들을 주님께서 모르셨던 것이 아닙니다. ‘사탄의 나라가 얼마나 견고한 줄 아느냐’고 이미 제자들에게 이르셨지요. 사탄은 이제까지 그들이 차지하고 있던 영토를 결코 순순히 내어주지 않습니다. 그들도 안간힘을 써서 저항합니다. 아마 우리 인간의 몸에 들어올 때 그들은 특명을 받은 것 같기도 합니다. 일단 들어가면 죽을 때가 되어서야 나오게끔 말입니다.

다만 성령께서 그들을 결박하여 쫓아내시면, 죽기 전에 악한 영들이 우리 몸에서 나가는 일이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의 힘으로 귀신이 나가면 하늘나라다’라고 말씀하신 일이 그대로 실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인간의 몸에 마귀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단 거부반응 부터 보입니다. 간혹 믿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아니 어떻게 성령님이 계신데 마귀가 우리 몸에 있을 수 있단 말이냐’며, 성령님이 마귀보다 약하냐고 반박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성령님이 마귀보다 약해서 그들을 못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무릎 꿇고 그분의 은혜를 간절히 청하며 기도의 단지에 기도가 쌓일 때에야 비로소 역사를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역사를 못하시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이 죽고 오직 주님의 힘으로’ 만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주님께로부터 영권을 받아 영적 사역을 하고 있지만 이 법칙에서 예외가 아닙니다. 그저 편하게 ‘주님 지금 역사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는 것이 아니라, 큰문제가 터지면 저도 똑같이 금식하고 어린아이처럼 주님께 기도합니다. 내 육이 죽은 만큼 주님의 영권이 세지며, 주님께서는 우리가 믿음으로 무릎 꿇고 매달리는 것을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계속해서 영적인 싸움을 하셨습니다. 듣기 좋은 에세이 같은 가르침을 전한 것이 아닙니다. 힘 있는 복음을 능력과 함께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것이 영적 전투이므로,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 역시 영적 세계에 한발자국 더 깊게 들어가기 위해서는 귀신, 마귀 이야기를 반드시 해야 합니다. 혹자는 ‘너무 귀신 이야기만 하는 게 아니냐?’고 할 지 몰라도, 영적 세계를 가르치는 것이 복음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영의 세계를 모르고 영이 열리지 않으면 실제로 우리 삶을 칭칭 감고 있는 악한 세력과 싸우지도 못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대적 명령을 해도, 영적 세계의 실상을 모르고 주님으로부터 영권을 공급받지 못한다면 마귀들이 오히려 코웃음을 칩니다. 그래서 옛날 은수자들도 이 싸움을 하는 영적인 사람이 되는 관문으로 폐허의 성을 찾아다녔습니다. 귀신을 만나서 이기기 위해서 일부러 찾아다닌 것입니다. 요컨대 어둠의 실체를 모르고 영적인 일을 하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또한 이 영적 세계의 법칙을 모르면 복음에 수 없이 나오는 ‘귀신, 마귀, 사탄’을 전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억지로 성경 해석을 하면서 ‘그건 그때의 표현 방식이 그랬다’는 식으로 진리를 그르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인위적’으로 해석하는 우를 범합니다. 이는 나 자신이 피부로 느끼고 깨달고 감동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저지르는 것입니다.





3. 예수님께서 주신 해방과 구원의 은혜





예수님께서는 항상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주셨고, 우리의 삶 속에 깊숙이 들어 오셨습니다. 다름 아닌우리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이 마귀에게 점령당한 상태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각자의 삶의 전인적인 치유를 주셨습니다. 창조주께서 우리에게 진짜 오셔서 마귀에게 잡힌 곳을 친히 풀어주셨다니 얼마나 놀라운 은혜 입니까!

제가 어릴 때만해도 동네마다 무당 중에 특히 점 잘 보는 사람에게는 사람들이 매일 문전성시를 이루었지요. ‘언제가 손 없는 날이냐. 떡은 언제 하냐. 이사는 언제 가냐. 지붕을 고치려는데 언제가 좋냐’ 이렇게 사람들이 일상사를 귀신에게 고개 숙여 문의하고, 빌고 바치지 않으면 귀신은 가만히 있질 않았습니다. 불과 몇 십 년 전만 하더라도 마귀들이 득세하는 분위기에 잡혀있던 게 우리네 일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원래 이런 세계에서 살다가, 때 되면 죽을 수밖에 없나보다’ 하고 이 마귀 문화를 체념으로 받아들이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가 세워지는 곳 마다 이들이 제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시자 모든 것을 고쳐주시고 일소하셨고, 잘못되어 있었던 모든 것들을 180도 올바른 방향으로 돌려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구원의 은혜를 우리 삶에서 실제로 경험하는 데에는 기도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하늘의 권능을 끌어내릴 수 있는 길은 한마디로 ‘회개하고 기도하라’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기도의 독이 끝까지 찼을 때 현실의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때 주님의 성령이 악한 영을 결박하시고 쫓아내 주시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는 가수 윤항기의 회개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아십니까? 가수 생활에서 인기 절정에 있었을 때, 이 사람은 집에도 몇 달에 한 번씩 들어갈 뿐이고 항상 여자들에게 둘러 싸여서 아주 정신없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부인이 믿음 생활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헌데 연말에 가수 대상을 받는 그 날 그가 쓰러져서 병원으로 옮겨보니 이미 폐암 말기라고 하더랍니다. 이때 죽을 준비하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부인은 오히려 ‘하나님 제 기도에 응답하셔서 감사합니다’ 하며 돌아갔습니다. 그날로 이 부인은 40일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윤항기는 살아났습니다. 그는 지금 건강이야 말할 것도 없고, 찬양 신학교를 세워서 동생 윤복희와 찬양 사역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간증을 할 때마다 ‘내가 바로 그때 마귀였다’고 고백한다고 합니다.

자, 여러분. 믿음으로 40일 기도를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만약 그 부인이 20일만 기도했으면 폐암 말기에 이를 만큼 사람을 사망으로 이끌던 마귀의 강력한 진을 파괴할 수 있었을까요? 기도도 어렵고 금식기도는 더 어렵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이처럼 죽을 각오로 해야 합니다. 영적 법칙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마귀를 이기면 내가 이 땅에서 주님의 통치를 만끽하며 ‘예수님 권세 내 권세’로 사는 것이고, 그렇지 못할 경우에 구원은 받았지만 삶에서는 여전히 자유하지 못한 부분을 짊어진 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는 승리 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 나의 삶을 억눌렀던 마귀에 대해 ‘나의 원수를 반드시 갚고 말겠다’는 마음으로 영적 싸움을 해야 합니다.





4.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 영적 전투를 하자





내 문제로 싸우고 승리를 이루었다면, 그 다음에는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을 가지고 싸웁니다. 한번 승리하고 나면 다음 문제에도 자신이 생기며, 영적 싸움은 한번 씩 이길 때마다 더 큰 비전을 향해서 달려 나갈 수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싸움이 계속 기다리고 있는 상황인데, 반대로 바로 앞에 있는 싸움 하나에서 이기지 못하면 그대로 끝입니다.

우리 앞의 모든 문제가 결국엔 영적 싸움입니다. 이 싸움에서 가장 전제되어야 할 것은 나 자신이 경건하고 세상을 끊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면서도 세상을 끊지 못하면 마귀를 도저히 이길 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나 스스로 마귀를 붙잡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내가 명예든 물질이든 권력이든 욕심을 내는 부분이 있으면, 그 부분에서는 내가 ‘마귀의 통치’를 받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렇게 잡혀있는 상태에서는 기도를 해도 마귀가 절대 나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일단 내게 있는 모든 세상적인 것들을 단호하게 칼로 끊어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기도를 해야 몰아내는 것이 순서입니다.



예수님께서 끊임없이 이러한 영적인 전투를 하셨는데,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현재의 신앙생활은 예수님이 하신 일과 얼마나 멀리 와 있습니까? 성도들은 잘못 그려진 해석들을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사역이 지금 이 시대에는 도저히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믿는 실정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여러분, 과연 우리의 복음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 현주소가 어디에 있습니까?

복 음은 지식적이고 철학적인 언어로 해석할 대상이 결코 아닙니다. 학문적인 해석에 몰두하는 사람들은, 실질적으로 주님의 역사를 도무지 모르는 채, 책상에 앉아서 하는 연구로 말미암아 정작 본인도 주님을 영으로 만나지 못했을 뿐더러 사람들이 주님을 만나는 통로까지도 막아버리고 맙니다. 

예수님은 어렵게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맑은 눈 그대로 말씀을 대하고, 성경을 주님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누구든지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만약 초등학교 6학년 아이에게 성경을 읽고 나서 독후감을 써보라고 한다면, 이 아이가 일반 신자들보다 더 정확히 그 핵심을 찾아낼 것입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하늘나라를 보여주셨습니까? 당신이 하늘나라를 가지고 내려 오셨기에, 성령의 힘으로 귀신이 떠나면 하늘나라가 너희에게 임한 줄로 알라고 하셨으며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늘 또 다른 증표를 요구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영적 눈이 닫혀 있는 그들의 꽉 막힌 요구에 상관없이 계속해서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사도 시대에도 또 지금도 언제나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이 본질을 모르면 아무리 영적인 지도자라고 하더라도 ‘불신자’의 칭호를 들어 마땅합니다. 그는 예수님의 사역을 인정하지 못한 채 율법에만 통달한 바리새인들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본문 말씀에 뒤이어 마태복음 12장 31절을 보면 아주 무서운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영적 사역에 대들면 이 세상과 저 세상 모두에서 용서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오죽 답답하셨으면, ‘내 말을 거역해도 용서한다’고 하셨는데, 성령님을 거역하면 용서함이 없다고 하셨겠습니까?

여 러분, 이 시대에 마지막 대 추수꾼으로 불림 받고 사명을 감당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주님을 반드시 영으로 만나야 합니다. 또 예수님 시대에도 존재했던 바리새인들처럼 복음의 진리를 훼손하는 사람들에게는 목숨을 내걸고 저항하여 복음을 사수해야합니다. 그리할 때 예수님께서는 ‘정말 너는 내 사랑하는 종, 충실한 종이다’ 라고 하실 줄로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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