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모세 목사님/양사라 원장님 말씀

성경을 알기 쉽고도 깊이있게 배워보는 코너입니다. 영적 깊이가 더해지는 소중한 시간이되길 바랍니다. 아울러 말씀에 제시된 환상 등은 원장님께서 개인적으로 받으신 내용으로 다른 성도분들께는 다른 이미지로 계시해주실 수 있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제목 아말렉과의 영적 전쟁 (출 17:8-12)
작성자 기쁨
작성일자 2011-02-13
조회수 4571




아말렉과의 영적 전쟁 (출 17:8-12)





그 때에 아말렉이 와서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서리라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가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한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1. 기도할 때 역사하시는 하나님





이스라엘이 백성이 드디어 출애굽을 한 후, 그들은 광야길로 들어섰습니다. 이들은 애굽에 떨어진 열 가지 재앙 및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체험할 때는 ‘할렐루야, 할렐루야’ 하고 노래를 불렀지만, 막상 광야에 들어오고 보니 목마르며 덥고 또 짜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아말렉이 오기 전에도 이들은 분명히 투덜대었을 것입니다. 투덜댔더니 곧 아말렉이 왔습니다.

아 말렉의 진영은 무장을 갖춘 무서운 군대였습니다. 이에 비한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노인과 어린아이, 여자들이 포함된 한낱 무리에 불과하였습니다. 따라서 아말렉이 이스라엘 민족을 한 입에 먹기란 정말 쉬운 일이었습니다. 이 위급한 상황에서 모세는 ‘나는 올라가서 기도해야겠다. 여호수아 네가 이들을 데리고 나가서 대적을 하라’ 고 지시한 후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출 17:9)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서리라



객관적으로 전쟁의 결과는 불 보듯 뻔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기도를 하기 시작하니, 너무 오합지졸이라 군대라고 칭할 수도 없는 이스라엘 진영이 중무장을 한 아말렉을 밀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모세가 지쳐서 기도하던 손을 내리면 다시 아말렉이 우세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놀라운 영적 법칙 하나를 알 수 있습니다. 곧 하나님은 ‘오직 기도하는 사람에게’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어떤 민족입니까? 하나님 당신의 손으로 직접 출애굽 시킨 민족 아닙니까? 하지만 아말렉이 쳐들어왔을 때, 그들이 만약 ‘무서워요. 이기게 해주세요’ 하면서 가만히 있기만 했다면, 주님께서는 역사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주여! 당신만이 구원의 힘이십니다! 살려주십시오!’ 하면서 간절히 매달려 부르짖을 때 주님께서 역사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론과 훌은 모세가 기도를 멈추지 않게끔 돌을 가져다 그를 앉게 하고, 두 명이 양쪽에서 모세의 팔을 지탱하였습니다.



우리 인간은 물질계에 살고 있지만, 그 삶의 이면에서 작동하는 모든 사건은 영적인 세계의 결과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삶에서 크고 작은 문제를 겪고 있다면, 이 문제들은 모두 영적 싸움을 해서 이겨나가야 할 대상들입니다. 영적 전쟁을 할 때, ‘우리 편의 군비가 충분하냐 혹은 내가 중무장을 갖췄느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모세가 했듯이 온 몸과 전심을 다해 부르짖는 기도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일반적 상식으로 볼 때는 도저히 이해받을 수 없는 대처 방법일 것입니다. 맞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함은 성경에 기록된 그 모든 ‘믿기지 않는 사건들’을 정말로 믿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실제로 우리 영성원에서 많은 분들이 은혜를 받아 가면서 이 놀라운 영적 세계의 비밀 및 영계의 결과가 현실로 그대로 드러나는 사건들을 직접 체험하고 깊이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당장 눈앞의 현실이 힘들고 어려운데 다른 방법은 무시하고 오직 기도로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 우리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어쩌면 저다지도 비논리적이고 맹꽁이 같을 수가 있느냐?’는 식의 빈축을 사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다가온 아말렉을 ‘주님께서’ 물리쳐주실 것을 믿고 계속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방법은 따로 있습니다. 그들은 무슨 일이 터지면 곧장 전화기로 달려가 인맥을 동원하고 대출을 받는 등, 자기 자원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택하는 방법은 다릅니다. 나를 죽이려는 아말렉이 닥쳐올 때, 눈을 뜨고 일어서 두 손을 번쩍 들고 기도하십시오. 물론 현실적 해결책과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건 이 ‘믿음’으로 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찾으시는 것도 이러한 믿음입니다.



요한일서 5장 4절 말씀에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란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사람들이며, 우리의 믿음으로 주님의 놀라운 권능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2. 죄의 아말렉





자, 우리가 영적인 전쟁에 들어왔으니 이제 아말렉이 영적으로 무엇인지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 삶 속에서 아말렉은 죄의 아말렉, 유혹의 아말렉, 병과 가난의 아말렉 등 수 없이 많습니다. 요컨대 아말렉이란 주님 안에서 이미 구원받은 우리 삶이 실질적으로 기뻐 용약하지 못하게 방해하고 공격하는 세력을 뜻합니다.



가장 먼저 죄의 아말렉이 우리를 놔주지 않습니다. 즉 그들은 우리가 계속해서 죄를 짓게끔 하루에도 수없이 죄의 유혹을 던져줍니다. 만약 우리가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가는 순간 그들은 우리가 짓는 죄를 기화로 역사합니다.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듯 죄를 지으면 우리는 즉시 마귀의 종이 됩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죄가 우리에게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닙니다. 이럴 때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신분이 ‘하나님의 자녀’로 바뀌었음을 확실히 알고 마귀에게 강하게 대적해야 합니다.

요한일서 3장 8절 말씀에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서 분명히 알 수 있듯, 예수님께서는 마귀를 멸하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이 제1순위의 구원 사역라면, 동시에 그 분은 이 땅에서 마귀에게 짓눌리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구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의 종으로 살아야 했던 우리를 당신의 핏값을 치루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따라서 베드로전서 5장 8절 말씀,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에서 보듯, 우리는 늘 마귀 세력을 경계하며 그들이 공격해 들어올 때는 기도와 금식으로 물리쳐내야만 합니다.



마귀는 사람들 사이에 흔히 떠도는 공상처럼 귀신의 모양으로 떠도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우리 안에도 있고 밖에도 있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통해서 역사하고 또 주변 사람과 사건을 통해서 실질적으로 역사합니다. 아말렉의 목적은 어떻게든 우리를 죽이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공격해 들어올 때 우리가 무섭다고 그만 주저앉으면 마귀는 ‘얼씨구나’하면서 더욱 우리를 짓밟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내 힘으로 싸우라’ 고 요구하십니다. ‘너희는 내가 핏값을 주고 산 내 자녀들이니 싸워 이겨라’고 하십니다.

도움이 될 만한 예화가 하나 있습니다. 어떤 사람 하나가 갈대밭 한 가운데에 있는데, 저쪽에서 불이 일어나서 갈대가 안으로 타들어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제 몇 분 안에 그는 꼼짝 없이 불에 타죽어야 하는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그에게서 지혜가 생겨났습니다. 마침 라이터를 가지고 있었는데, ‘아 그래 저 불이 여기까지 오기 전에 지금 이 자리에서 불을 질러버려야겠구나’하고 먼저 자기 자리에 불을 지르고, 동그랗게 탄 자리에 얼른 쏙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맞은편에서 덮쳐오던 불길은 맞불을 만나서 모두 끝나버렸습니다.

이 예화를 말씀드린 이유는 우리를 죽일 듯이 위협하는 마귀에 대하여 우리가 더욱 담대하게 대적할 수 있음을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마귀가 우리를 위협하는 대표적인 두 가지 사건은 ‘네가 하는 일에서 너는 완전히 망했다’ 혹은 ‘네 생명은 이제 끝났다’는 것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두 가지 상황에서 흔들리기 마련이지만, 우리 성도들은 다를 수 있습니다. 내가 이미 예수님 안에 죽었기 때문에, 마귀가 죽이겠다고 달려든다 할지라도 ‘아 그래? 죽어도 좋다. 나는 이미 예수님 안에서 죽었다. 아니 사실 죽으면 더 좋다. 나는 바로 천국으로 옮겨질 것이기 때문이다’로 대든다면 마귀도 그런 사람 앞에서는 어떻게 하질 못합니다. 예수님 안의 우리에게 두려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3. 세속의 유혹과 정욕의 아말렉





두 번째 아말렉은 세속의 유혹과 정욕을 주는 아말렉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는 성령님이 계십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시게 되면 고린도전서 6장 1절 말씀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처럼, 성령님은 우리의 세속적이고 더러운 생각들을 모두 씻어주시고, 하나님 자녀에 합당하게끔 우리를 거룩하고 의롭게 만들어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에는 누구나 다 마귀의 자녀였다는 사실은, 우리의 말과 행실을 반추해보아도 쉽게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입에 담는 세속적인 욕망의 말들, 심지어 욕설들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모두가 마귀로부터 나온 것이 자명합니다. 그러나 주의 성령님이 내 안에 오시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후에 기도하며 우리 자신을 성령님께 맡겨드리면, 어느새 이러한 더러운 것들이 정화되어 나갑니다. 비단 입 위에 올라온 욕설뿐만 아니라, 삶 자체에 단단히 스며있는 세속이 점점 씻겨나갑니다.

마귀의 자녀일 때 우리는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부와 명예, 권력을 어떻게든 자기 쪽으로 끌어 모으려고 했습니다. 내가 삶의 중심이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어떻게 하면 이 한번 사는 인생에서 조금이라도 더 내 맘대로, 내 가족이 행복하게 즐기면서 살까에 모든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룩하고 의로운 삶’은 세상 삶의 방식으로는 전혀 상상도 못해본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과 이웃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면서도 자신을 태우면서 사는 촛불 같은 삶입니다.



죄를 기화로 아말렉이 우리에게 자리 잡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부분에서도 그들은 계속해서 옛날의 습관적인 삶으로 돌아가도록 우리를 자꾸 자극합니다. 즉 예수님 핏값으로 우리가 분명히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우리를 더럽게 만들기 위해 곳곳에서 공격을 퍼붓습니다.

말 하자면 이러한 논리입니다. ‘그래 주님을 믿기는 하지만, 세상을 사는 건 또 다른 논리로 살아야지. 주님을 섬기기도 잘 섬기겠지만 사는 건 또 세상 사람들에 뒤질 수 없지’ 라고 신앙과 삶을 분리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태도가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영적으로 해석하면, 아말렉이 우리에게 퍼붓는 ‘더러운 똥물’을 그대로 환영하는 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주님의 보혈로 구원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그 근본에서부터 내 자신이 ‘그리스인의 삶’으로 완전히 돌아서서 삶을 다르게 살지 않는다면 신앙생활은 형식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거룩한 삶과는 전혀 상관없이 ‘그냥 그대로의 삶’에 안주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생활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이 여전히 이기적이고 여러 가지 더러운 행실을 한다면 그것은 한마디로 가짜입니다. 주님의 영 자체가 거룩함이신데, 어찌 그분을 내 안에 모셨다고 하면서 욕을 할 수 있겠습니까? 어찌 세속을 탐할 수 있고, 어찌 사람들을 시기하거나 원수 맺고 분쟁을 일으킬 수 있겠습니까?

내 영혼을 깨끗하고 의롭게 만들기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주님께서 나를 장악하시고 다스리시게 스스로 나를 내어드리는 행위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자기 멋대로 살 때, 우리는 무릎을 꿇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과 능력을 허락하시고, 우리는 영의 이 땅에 살면서도 물질계를 초월한 영의 세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또 하나의 예화가 있습니다. 아프리카에 가면 ‘뱀잡이 수리’라는 독수리가 있습니다. 이 독수리는 공중을 높이 날다가 뱀을 발견하면 쏜살같이 내려와 낚아 채간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땅에서 포획물을 먹고 있던 중 사자나 호랑이가 어슬렁거리면 주춤 주춤 피하다가 오히려 맹수에게 잡혀 먹혀버린다고 합니다. 이들은 얼마든지 날쌔게 공중으로 도망갈 수 있는데, 맹수들에게 기가 죽어 당황해서 자기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날지도 못하고 바들바들 떨다가 그들에게 잡혀 먹히는 거지요.

우 리의 영적 싸움이 이와 똑같습니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산다는 것은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고, 그분께서 나에게 부어주신 권세와 능력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세상의 고난에 그만 잠식 당하는 현실을 보십시오. 그 까닭은 근본적으로 우리가 예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마치 우리를 불에 태울 것처럼, 사자가 으르렁 거리듯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점점 마귀를 모르는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마귀 이야기를하면 사람들로부터 무식한 소리 한다는 핀잔을 듣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말렉과는 대항하는 영적 전쟁을 하지 않는다면, 결과는 우리가 그들에게 잡아먹히는 것으로 끝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십자가를 진 것은 너희의 저주를 씻어주고, 이제는 아브라함의 축복과 믿음의 성령을 주기 위해서’ 라고 하십니다.

(갈 3:13-14)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아브라함의 축복은 풍성함이 넘치는 축복을 뜻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는 가정 군사만 318명을 둘 정도로 부유했습니다. 사병이 그 정도라면 다른 종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영적으로 교제하는 삶까지 허락하신다고 하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주님께서 당신의 희생을 통해 주신 이 축복의 삶을 누려야 마땅하며, 온갖 종류의 아말렉이 들어올 때 단호하게 쳐 이겨야 합니다.





3. 병마와 가난의 아말렉





다음으로 병마의 아말렉이 있습니다. ‘암 걸려서 안 죽은 놈이 어디 있다더냐? 너는 이제 고통 속에서 죽을 거야’ 하면서 짓누르는 아말렉입니다. 자 여러분, 우리 주님은 치유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를 보면 그 장절 마다 그분께서 어떻게 병을 고치시고 죄를 용서하시고 마귀를 쫓아내셨는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 8:16-17)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안식일이 끝나는 시간이 되자마자, 여기 저기서 사람들이 귀신 들린 사람들을 예수님 앞에 데리고 왔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모두 치유하셨습니다. 즉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본시 인간은 병마의 저주를 받고 그 저주에 질질 끌려갈 운명이었지만, 예수님께서 이 저주를 당신의 몸에 직접 담당하심으로 인해 우리는 병마의 아말렉도 대적할 수 있습니다.요컨대 하나님께는 순종하고 마귀에게는 대적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4장 7절에 뭐라고 있습니까?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주 님께서는 분명히 우리에게 ‘대적하라 대적하라 대적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떠나리라’고 하셨지, ‘두려워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말씀은 영적 싸움의 큰 틀을 알려주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물론 기도로 쫓아내야 합니다. 그들이 빨리 떠나지 않으면 금식하고 더욱 부르짖어 떠날 때까지 싸워야 합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므로 그들은 반드시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전투에서 이들을 조금이라도 허용하면 안 됩니다.



병마뿐만 아니라 가난의 아말렉도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삶의 모든 저주, 우리 인생의 모든 가시덤불과 엉겅퀴들이 아말렉입니다. 겉으로는 모두 신사 숙녀처럼 차려 입고 웃지만, 한 사람 한 사람 그 살아온 질곡을 보면 속상한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은 사후 영생을 주시는 것에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의 현실, 그분은 우리 소우주의 구원을 원하십니다. 우리가 그 아픔들을 다 스스로 감당하려고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그 저주를 지고 가셨기 때문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낙심하고 우울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구속의 뜻이 무엇입니까. 구속은 노예를 살 때 그 값을 지불하고 사갔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정체성을 충분히 깨닫고 그대로 살아가지 못한다면, 마치 뱀잡이 수리같이 충분히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맹수 앞에서 벌벌 떠는 것과 똑같습니다.

마귀는 여러 방면에서 우리를 덮쳐옵니다. 우리를 두렵게 만들고 힘들게 만들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에게는 ‘팔자소관’이라는 말이 더 이상 해당되지 않습니다. 왜냐면 고린도 후서 5장 17절 말씀처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원래 인간의 가야 할 길은 저주 아래에서 짓밟히다 죽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피가 새로운 길을 만드셨습니다. 율법이 아닌 새로운 길을 만드셨고, 이는 창조주께서 나를 위하여 장대에 매달려 피를 쏟으심으로써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여러분, 구원을 받음은 물론이고 삶에서도 은혜를 받아 주님의 축복을 풍성히 누려야 합니다. 주님께서 ‘얘들아, 사랑하는 내 아들아 딸들아 내가 너희를 위해 그 빚을 다 청산했단다’ 하시면, 우리는 다시는 그 저주의 지배에 들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가난이 떠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가난의 저주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묶임을 받고 떠나라’ 하고 물리쳐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적입니다.

(고후 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성도여러분! 영적 전쟁은 이러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핏값을 주시고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들을 절대로 아말렉에게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 복음의 힘은 짓눌린 환경과, 삶의 어려움, 병을 이기고도 남습니다. 이것을 깨닫고, 뱀잡이 수리가 얼마든지 날쌔게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정체성 그대로 내 안에 계신 주님의 능력을 신뢰하며 마귀를 물리쳐나가면 우리는 능히 그들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행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삶은 모든 것이 어마어마한 영적 전쟁인데도, 교회는 이 진리를 제대로 알지도 가르치지도 못합니다. 이제부터 눈을 부릅뜨고, 한 번에 아말렉이 진멸하지 않는다면 바로 금식하고 또 도움을 요청하며 이 전쟁을 해 나갈 때, 마귀의 움직임이 하나하나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주님은 성령을 부어서 왕으로 만드십니다. 왕이 무엇입니까? 통치자입니다. 그 권한은 입법, 행정, 사법 따로따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전권을 누리는 통치권입니다. 임기도 없고 자손 대대도 물려받는 것이 왕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당신의 생명 안에서 왕이 되길 바라십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예수님과 함께 다스릴 수 있습니다.

나 혼자 힘으로는 절대 마귀를 이길 수 없지만, 우리가 주님께 의지하고 또 의지할 때, 아기가 엄마 손을 놓으면 큰일 날 것처럼 주님 손을 꼭 붙잡고 싸움을 포기하지 않을 때, 요한일서 5장 4절의 말씀이 이루어질 수 믿습니다. 아멘.

(요일 5: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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