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모세 목사님/양사라 원장님 말씀

성경을 알기 쉽고도 깊이있게 배워보는 코너입니다. 영적 깊이가 더해지는 소중한 시간이되길 바랍니다. 아울러 말씀에 제시된 환상 등은 원장님께서 개인적으로 받으신 내용으로 다른 성도분들께는 다른 이미지로 계시해주실 수 있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제목 연단으로 주님과 하나됨 (히 5:12-6:2)
작성자 기쁨
작성일자 2011-02-04
조회수 3953





연단으로 주님과 하나됨 (히 5:12-6:2)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1. 주님과의 일치를 위한 연단





성장해 나아가는 신앙인으로서 '단단한 음식'을 먹고자 한다면 누구나 연단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솔직히 연단을 정말로 원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모두는 초보의 신앙에 머무를 것이 아니며, 반드시 발전하여 성숙한 신앙인으로 나아가야한다는 가르침을 받습니다. 이 부분은 지금 현시대의 교회 모습에 대입해도 똑같이 적용이 될 수 있는 말씀입니다.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갈 수록 영적 세계에 눈을 뜨게 됩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믿느냐 안 믿느냐, 혹은 회개를 했느냐 안했느냐, 또는 세례를 받았느냐 아니냐, 회개가 되었냐 아니냐’ 등 아주 초보적인 수준의 신앙생활이 전부인 줄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당연히 일어나야 할 신앙생활의 각성과 발전이 아직도 요원합니다.



따라서 본문 말씀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라고 하였듯이, 우리가 가야할 길은 궁극적으로 주님께서 우리 인간을 만드신 목적과 더불어 영광에서 영광으로 화하는 완전함입니다.



요한복음 17장 22-23절에서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기도하셨을 때, 그분은 ‘당신과 내가 하나이듯, 저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즉 내가 예수님과 하나가 되었음은 나 역시 영적인 놀라운 세계를 깨닫고, 나를 통하여 주님의 놀라운 영적 능력이 나오는 사람으로 바뀌어 감을 뜻합니다. 또 주님께서는 우리를 이러한 사람으로 만들어주고자 원하십니다. 로마서 8장 30에 보면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왜 우리 신앙인은 늘 같은 자리에 머물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나라에 선교사를 파송한 유럽의 기독교 국가들에서는 현재 성령님이 아니라 '신학'이 교회의 주인이 되어 결국 영적으로는 죽음 직전의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원래 에베소서 1장 22절-23절 말씀대로 교회의 주인은 마땅히 예수님이 되셔야 합니다. 이는 곧 다윗이 하나님께 하나하나 상의하면서 앞길을 나아갔듯, 예수님의 영이 ‘가라 가지 마라, 하라 하지 마라’ 이르시는 그대로의 계시를 받아서 움직이는 것이 주님의 참된 교회입니다. 이렇게 될 때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를 통해서 드러나며, 사도행전에 나오는 것처럼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힘 있는 교회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2. 주님의 영광을 드러낸 사도들처럼





우리 여기서 사도행전에서 주님의 종들이 어떠한 사역들을 펼쳤는지 되짚어 봅시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이르는 성숙한 신앙인의 모범이란 바로 이들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사도 역시 인간적으로 볼 때는 흠이 많은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오순절의 완성된 성령을 받고 나서부터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사도행전 3장을 보면 베드로 사도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을 때 미문에 앉은뱅이를 일으킨 사건이 나옵니다.

(행 3:1-10)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 새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

자, 여러분! 우리도 궁극적으로는 베드로 사도의 사역과 같은 이런 일을 해야 합니다. 가난한 이에게 밥을 먹여주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여러 가지 봉사에 참여하는 것도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일들은 우리 기독교만 하는 것이 아니라 허다한 사이비 종교도 하는 일입니다. 즉 선행자체가 우리의 목적은 아니며, 그들은 다만 복음을 전하는 통로이자 사랑을 베푸는 하나의 실천적 과정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교의 근본적 목적은 예수님께서 가져오신 하늘나라와 하나님께 받은 영광을 백성들이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나자렛 예수의 이름으로 선포할 때 기적이 일어나고, 하늘나라의 참다운 영광이 예수님과 함께함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사야 43장 21절에서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라 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무엇인가를 알려주십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지으신 제일 된 목적은 우리 인간들로부터 영광을 받으시는데 있습니다. 따라서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일으켰을 때, 그는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주님의 영광을 드러냈습니다.

동시에 사도행전 3장의 이 사역은 베드로가 했지만, 갈2장 20절내 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말씀과 연결시킨다면 사실 그 이면에는 예수님이 앉은뱅이를 일으키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베드로 자신은 죽은 채, 베드로 안의 성령님께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 주신 것이지요. 베드로는 성령님께서 시키시는 그대로 행한 것뿐입니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의사이지 않았습니까. 의사가 볼 때도 앉은뱅이가 일어난 기적을 가감 없이 적었다는 것만 보아도 이 사건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하나의 증거가 될 수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한편 사도행전 14장에 도 비슷하게 바울 사도가 루스드라에서 어떻게 주님의 영광을 드러냈는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나바와 전도 여행을 갔던 때였는데, 여기서도 주님의 권능으로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를 일으켰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을 입증하시는 방법은 다름 아닌 그들을 통하여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12장 12절에서 바울 사도가 사도의 표가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라고 분명히 말했던 것입니다.







3. 주님과 하나가 된 성숙한 신앙인으로





오늘의 본문 말씀은 우리를 더 깊은 영의 세계로 초대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육신은 이 세상에 살고 있되, 실상 우리 자신-즉 우리의 영혼은 이 세상에 사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영광과 온전히 하나가 되어 이 땅에 사는 사람은 마치 전설 속의 인어처럼 한쪽은 사람이면서 동시에 한쪽은 영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 10장 35절에 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은 신’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주님과 하나라면 우리에게 신적인 능력이 나오는 것이 전혀 신기한 일이 아닙니다. 무당들도 귀신의 힘을 빌어서 영의 비밀을 알아내는데, 하물며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의 영을 받았으므로 그보다 더욱 뛰어난 힘을 드러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주님께서 이 시대에 오신다면, 분명 ‘너희들 적당하게 신학 공부하고, 건전한 예화를 넣어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지는 않으실 겁니다. 당신의 백성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초보신앙에 머물러만 있어도 괜찮다고 하지는 않으실 겁니다. 요한복음 14장 20절에서 예수님께서 성부께 간절히 기도하신 그대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가 되자’고 하셨습니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이를 위해서는 우리 자신을 산 제물로 예수님께 내어드려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우리 안에 주님이 거하시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주님께서 내 안에 살아계심으로써,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충만히 계신 성령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실 때, 이 시대의 온갖 병들은 주님의 역사로 치유되고도 남습니다. 현대병이라고 하는 우울증, 불면증, 각종 중독 현상들도 뿌리까지 가보면 결국 전부가 영적 치유의 대상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초보 신앙에 머물거나, 자신의 구원에만 자족할 것이 아니라 더 깊고 온전한 믿음으로 세상에 나아가 주님의 뜻을 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초대 교회에 비교한다면 이 시대에 교회가 세상에 무엇을 내놓고 있는지요. 정말 놀라운 주님의 살아계심을 세상에 널리 드러내려면 우선 우리가 바뀌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우리를 바꾸어서 당신의 도구로 쓰시기 위해 주님께서는 연단을 시키십니다. 그 연단의 뼈아픈 과정을 통해 육의 마음을 다 버리고 오직 이 놀라운 영의 비밀을 깨닫게 하셔서, 세상 것을 모두 놓을 힘을 주십니다. 지금 이 자리에 계신 성도 여러분도 ‘바로 내가 그러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소망을 품고, 주님으로부터 연단을 받아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신앙인으로 성숙되어 나아가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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