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모세 목사님/양사라 원장님 말씀

성경을 알기 쉽고도 깊이있게 배워보는 코너입니다. 영적 깊이가 더해지는 소중한 시간이되길 바랍니다. 아울러 말씀에 제시된 환상 등은 원장님께서 개인적으로 받으신 내용으로 다른 성도분들께는 다른 이미지로 계시해주실 수 있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제목 출애굽의 역사 (출 15:22-27)
작성자 기쁨
작성일자 2011-01-19
조회수 3348

 

 

출애굽의 역사 : 우리의 믿음과 주님의 계획 (출 15:22-27)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1. 약속을 기억하시고 지키시는 하나님



출애굽 당시 주님께서는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렸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털 끝 하나 상하지 않은 채 애굽에만 떨어진 모든 재앙들을 전율하며 지켜보았습니다. 당시 이 놀라운 기적을 겪으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크게 감격했을까요! 애굽은 지금으로 치자면 미국 정도의 어마어마한 강대국이었고, 이스라엘 민족은 오랫동안 노예 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물리적인 힘으로는 어떤 방법을 써도 애굽에서 해방될 수가 없었고 꼼짝없이 평생 종살이로 죽어야 했건만, 드디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과 약속하셨던 시간이 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줄곧 그들의 고통과 울부짖음을 모두 보고 듣고 계셨으며, 때가 되자 400여년 전에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하셨던 약속을 기억하시고, 모세를 통해 그들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던 겁니다.

 

주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이루어진 사람이라면, 지금 이 시대에도 주님의 약속을 들을 수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우리 자신이 주님의 약속을 받을 만한 믿음, 주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믿음을 가졌는지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이를테면 나 자신은 비록 마귀에 짓눌려 있을 수 있을지언정, 나의 후손에 대하여 주님께서 엄청난 축복을 베푸실 것을 약속해주시기도 합니다. 우리가 인간적으로 아무리 대단한 유산을 남겨놓고 갈 지라도, 결국 물질적인 모든 것들은 한 순간에 바람처럼 날아갑니다. 하지만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나의 후손을 기억하시고 지켜주신다면, 우리가 비록 이 땅에 살 때 실질적인 풍요를 누리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천상에서 후손들을 내려다볼 때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주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시고 그 약속을 언제나 신실하게 지키십니다. 성경에 ‘천대에 걸쳐 네 자손들에게 복을 내리겠다’고 하셨을 때, ‘천대’는 숫자상으로 봤을 때도 어마어마하지만 그 속 뜻은 ‘한없이, 끝없이’라는 의미입니다. 그 엄청나고 영원한 축복이 나와 하나님과의 우정,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집니다. 우리 각자는 한정된 수명을 지녔으므로 얼마 후에 하늘나라로 가겠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우리 인간은 그 자손들과 더불어 실질적으로 세세토록 살아있다고 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후손들에게 축복을 내리시겠다는 약속을 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출애굽 과정을 봅시다. 이스라엘 구원의 역사에서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전무후무한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저는 이 열 가지 재앙을 당하면서도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지 않은 바로를 생각할 때마다 마귀라는 것이 얼마나 징그럽고 끈질긴가를 봅니다. 바로는 영적인 의미에서 보자면 마귀입니다. 우리 영성원에서 축사 사역을 할 때, 아무리 빼내고 빼내도 마귀가 계속 나오는 것만 보아도 이들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는 애굽 전역에 걸쳐 내린 엄청난 재앙에도 끈질기게 저항하다가, 마지막에 이르러 굴복합니다.

이 열 번째 재앙은 사람과 짐승을 막론하고 모든 장자를 죽이는 재앙이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이 재앙이 지나쳐 갑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예표가 나옵니다. 유대 명절에 ‘유월절’이라는 명절은 패스오버(Passover), 우리말로는 ‘지나갔다’ 라고 번역됩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을 치실 때,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미리 특명을 내리셨는데 바로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와 문에 바르게 하여, 이 표지가 있는 집은 죽음이 덮치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유월절의 어린 양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가 됩니다. 즉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피 흘려 돌아가신 것을 믿는 자가 살 수 있다는 통로를 예표한 것입니다.

이렇게 바로의 장자, 종의 장자, 짐승의 첫새끼까지 모두 죽고 집집마다 초상이 나서 난리가 났던 때에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재앙이 조금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기쁨이었겠습니까. 이제 바로는 어쩔 수 없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떠나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땅에 들어간 지 430년 만에 해방되어 나올 때, 애굽 백성들에게는 이스라엘 백성을 존경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들이 창조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민족이었기 때문이지요.



2. 홍해 앞에서 믿음



이렇게 이스라엘의 온 백성이 어린아이와 가축들까지 이끌고 나흘 길을 걸어 홍해 앞에 당도했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갑자기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바로의 마음이 다시 완악해져서 군대를 동원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추격해 온 것이었습니다. 이때 주목해야할 것은 바로의 추격 보다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태도입니다. 그때까지 놀라운 열 가지 재앙을 보고, 또 이집트에서 나온지 며칠이 채 지나지도 않았는데, 그들은 당장 모세를 원망하였습니다.

(출 14:11-12)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모세도 한 사람의 인간으로 치자면, 이 사람 역시 자기 목숨을 내걸고 오로지 하나님의 명으로 실행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정작 이스라엘 백성은 ‘왜 거기서도 잘 살고 있는데 괜히 우리를 이끌어내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며 모세를 원망합니다.


믿음이 온전한 사람과 온전치 못한 사람의 차이는 좋은 시절이 아니라 불행이 닥쳤을 때 드러나고 맙니다. 신앙이 견고치 않은 사람들은 위기에 봉착하자마자 즉시 ‘다 너 때문이다’라는 식으로 그 화살을 남에게 돌립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지요.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변명이라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들은 분명히 하나님의 놀라운 영광을 맛보지 않았습니까. 또 그들이 모세 원망함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원망의 소리가 높아지자 모세도 다급해졌겠지요. 이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지팡이를 들어 바다를 가르라고 이르셨습니다 :

(출 14:15-16)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주님의 명에 따라 모세가 지팡이를 높이 쳐들었을 때, 홍해에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홍해는 한 순간에 갈라진 것이 아니라 밤새도록 큰 동풍이 바닷물을 물러가게 해서 마른 땅이 드러났다고 나옵니다. 동시에 구름 기둥이 애굽 진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서서, 애굽 군대들 앞에는 구름과 흑암이 뒤덮게 하셨습니다.

이 들이 드디어 홍해를 걸어서 건너오자 모세의 누나 미리암과 많은 여인들이 소고를 치며 하나님을 찬양했다고 합니다. 온 백성이 다 같이 춤을 추고 기뻐하지 않았겠습니까. 얼마나 놀랍습니까. 바다가 갈라지고 그곳을 걸어 건너오고, 추격하는 애굽이 군대들은 모두 수장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3. 쓴물을 생명수로 바꾸시는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이 온전한 믿음 안으로 들어오기까지는 그 구비 구비마다 여전히 많은 시험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출애굽과 광야 여정 초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이 어떠했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준비하심이 어떠했는지를 동시에 조명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홍해를 건너 사흘 동안 광야 길을 걸었는데 이번에는 물이 떨어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여기서도 전과 마찬가지로 모세를 원망합니다. 만약 이들이 ‘홍해를 건너게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수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지금은 조금 목마르지만 미리 모든 것을 준비하셨을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를 외치며 인내하며 기쁨을 잃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지만 거듭되는 백성의 원망에 시달리던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주님께서는 물을 달게 할 수 있는 나무를 하나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은 이미 ‘여기쯤 오면 이들이 목이 마를 것이다’ 하고 마스터 플랜을 짜 놓으셨습니다. 문제는 주님의 계획을 바라보며 참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을 못 참고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우리도 자주 이렇지 않습니까. 어떠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이 역시 주님의 섭리에 따라,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룰 줄 믿습니다’ 라는 태도가 아니라 불만에 차 있다면, 주님과 나의 ‘사랑 관계’는 손상 되어 버립니다.


한편 주님께서 모세에게 보여주신 이 나무는 ‘십자가’의 예표가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쓴 물, 망한 것, 죽은 것. 먹을 수 없는 것을 생명수로 바꿉니다. 본문에서 모세가 그 나무를 던졌더니 물이 달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어 주님께서 말씀하시길, 본문 25절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라고 하셨습니다. 곧 주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는 한, 당신의 백성에게는 아무런 병도 닥치지 않을 것이라며, 당신이 ‘여호와 라파’ 치유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광야에서도 물과 양식, 출산과 치료의 복을 끊임없이 내려주셨습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의 핵심은 우리의 신앙이 궁극적으로 도달해야할 곳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도 우리의 믿음은 성경의 모든 말씀을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출애굽은 소설 같기도 하고, 현대인의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 되지 않는 사건이 아닙니까? 어떻게 이 시대에도 그런 일이 일어난단 말입니까?’ 라고 의심하며 접어놓으면 안 됩니다. 성경의 모든 사건이 ‘그때 그 사건, 그 사람들에게만 일어난 역사’로 치부한다면 정작 믿음 생활을 하면서도 ‘나 자신’과 성경은 아무 상관이 없으며, 성경은 죽은 문자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생명의 말씀으로 살려놓는 것은 우리의 믿음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듯 바로가 영적인 의미로 마귀라면, 애굽은 곧 세상입니다. 또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받음은 곧 주님께서 우리를 이 죽음의 세상에서 우리를 이끌고 나오셨음을 뜻합니다. 그래서 출애굽 과정에서 열 번째 재앙이 이스라엘 백성을 지나갔을 때도, 마라의 쓴 물이 단물로 변했을 때도 이 역사적 사건들은 예수님의 피와 십자가를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신앙의 여정은 그 걸음 걸음마다 ‘가나안’으로 가는 여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때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주님의 은혜를 받으면서 동시에 광야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가는 길목마다 마귀들도 우리를 공격하고, 은혜 생활 가운데도 시험과 환란이 끊임없이 닥칩니다. 허나 우리가 잊지말아야할 것은 모든 고비의 순간에 오늘의 말씀처럼 ‘준비하시는 하나님’이 가까이 계시다는 믿음입니다.


광야의 낮에는 태양이 너무 뜨거워서 맨 몸으로는 한 순간도 버티기 힘듭니다. 하나님은 구름 기둥을 주셨습니다. 아마 구름 기둥 안에 자동 에어컨 기능이 되어서 그 더운 낮에도 살살살 바람이 불었을 겁니다. 또 일교차가 심한 사막에서 밤이 되면 견디기 힘든 추위가 옵니다. 하나님은 불기둥을 세워주셨고, 아침에 일어나면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셨습니다. 이렇게 40년을 걷는 내내 그들의 옷과 신발이 닳지 않았습니다.

(신29:5)

주께서 사십년 동안 너희를 인도하여 광야를 통행케 하셨거니와

너희 몸의 옷이 낡지 아니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으며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과정을 잘 알고 있습니다. 기적에 기적을 더해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끊임없이 투덜거렸는지, 그들이 어떻게 우상 숭배로 돌아섰는지도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의 마지막에 그들은 엘림의 휴양지에 도착합니다. 이처럼 우리 모든 삶의 길목마다 하나님께서는 종려나무와 오아시스가 있는 휴양지를 곳곳에 마련해두셨습니다. 풍성한 은혜와 휴식도 필요함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했던 우를 범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신앙생활은 늘 순풍에 돛단배처럼 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주님께서 택하고 부르셨기에, 바로 그 이유로 악한 영은 우리를 더 노리고 있습니다. 우리 눈을 가리기도 하고, 집안에서도 여러 가지 사건을 일으키기도 하고, 크고 작은 일에서 방해를 합니다. 하지만 마귀의 방해들이 극심해질수록 ‘아 더 좋은 게 기다리고 있구나’ 하는 마음으로 밀어붙여야 합니다. 마귀들이 은혜의 자리를 더욱 잘 알기 때문에 방해를 하는 겁니다.

우리에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길처럼 여러 가지 시련이 앞으로도 무수히 일어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인내하고 부르짖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을 신뢰하라고 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힘들 때마다 오늘 본문의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시고, 또 시편 91편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하신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날마다 승리하는 삶을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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