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모세 목사님/양사라 원장님 말씀

성경을 알기 쉽고도 깊이있게 배워보는 코너입니다. 영적 깊이가 더해지는 소중한 시간이되길 바랍니다. 아울러 말씀에 제시된 환상 등은 원장님께서 개인적으로 받으신 내용으로 다른 성도분들께는 다른 이미지로 계시해주실 수 있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제목 거듭남 (요 3:1-8)
작성자 기쁨
작성일자 2011-01-17
조회수 3830
 

거듭남 (요 3:1-8)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1. 주님의 사람이 일구는 놀라운 변화



여러분도 잘 아시는 고 김준곤 목사님은 한국 대학생 선교회(한국 CCC)를 창립한 분입니다. 이 분이 선교 운동을 처음 시작했을 때 모토를 ‘찾았네 찾았네’라고 정했습니다. 목사님이 민족복음화 운동을 위해 한국 CCC를 시작했던 1958년에 우리나라의 GNP는 고작 78달라 였습니다. 너무나도 가난한 이 나라에서 이 분은 예수님의 진리로 나라 전체가 살아날 수 있음을 찾아내고, 1960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대학 캠퍼스 사역을 시작하였습니다.

목사님은 순수한 젊은이들에게 “이 현실을 보지 말자, 예수님을 바라보아 일어나자”라고 복음을 전파했고, 처음에는 150명의 그룹원들에게 세달 동안 복음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꼭 다음 모임에는 각자 1명씩 더 데리고 오기로 약속하자”라고 했던 것이 부흥의 시작이 되었고, 1974년 한국 기독교 부흥 운동의 영적 대 각성을 불러온 집회 <엑스플로 74>까지 이어졌습니다. 여기 세계 각국의 기독교인 30만 명이 모였고, 이 집회를 계기로 우리나라에 부흥의 불이 또 다시 지펴졌습니다.


자, 오늘 본문 말씀의 주제는 “거듭남”입니다. 김준곤 목사님이 그 가난한 시절에 “찾았네 찾았네”하고 기뻐 외쳤던 까닭은, 예수님 안에서 이 땅의 암울한 현실이 마치 모든 것이 다시 태어난 듯이 바뀔 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놀라운 부흥운동이 있었던 우리나라가 지금은 다시 영적으로 죽어가는 안타까운 현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그저 막연하게 주님의 하늘나라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실질적으로 주님의 사람으로 거듭나서 마지막 대 추수날에 쓰임 받을 수 있는 군사가 되는 놀라운 변화를 일구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주제로 은혜를 나눌까 합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 니고데모라는 산헤드린 의원이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산헤드린은 유대인 최고 의결기관으로 국가의 내무행정을 장악하던 곳이었습니다. 소수의 엘리트만 참석할 수 있었던 이 공회에 속해있던 것을 보면, 니고데모는 사회적으로 대단한 지위에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제도권에 있는 사람이었지만 예수님의 행적을 보니 하나님이 보낸 사람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일을 했다고 생각했기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남들이 다 보는 대낮에 간다면 신분상 불이익이 닥칠지 몰라 밤이 되어서야 온 것입니다.

이때 그는 예수님께 ‘랍비여, 당신이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고서야 이러한 놀라운 표적을 행하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의 칭송을 거두절미하고 곧바로 영생의 길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실 때 ‘진실로 진실로’하고 먼저 말씀하신다면, 그 말은 정말 너무나도 중요한 말씀이기 때문에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니고데모의 말에 예수님의 대답은 ‘사람이 거듭나지 않고는 하늘나라를 볼 수 없다’는 말씀이었습니다.



2. 주님께서 영을 열어주실 때



“거듭남”은 니고데모에게만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신앙인들에게도 그렇게 쉬운 주제가 아니며, 한 번에 깨달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거듭남"의 사건은 주님께서 ‘영을 열어주시는’ 것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제 영이 열리니까 신학적인 책에서는 한 번도 읽어보질 못했던 현상을 체험하게 되었고, 이 체험으로 인해 영적 세계의 실체를 알아나가게 되었습니다. 영이 열리는 모습들은 각 사람마다 다릅니다. 또 주님께서 영을 열어주시는 통로는 여러 가지인데 한 사람마다 보통 두~세 개의 통로가 허락됩니다. 모든 영적인 은사들은 인간의 자력으로 열심히 뛰어가서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주님의 선물입니다(고전 12:7).

그렇게 주님께서 영을 열어주시는 사람만이 오늘 본문 3절 말 씀대로 하늘나라를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요컨대 ‘거듭난 사람’이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을 뜻합니다. 무당도 영계를 잘 압니다. 하지만 이들은 결국 사망으로 이끌어갈 귀신이 영을 열어 주는 것이지만, 우리는 성령님이 주셔서 영계를 보는 것이며 이 둘은 아예 차원을 달리 합니다.


먼저 ‘영안’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영안이 열리면 환상이 마치 텔레비전 화면처럼 펼쳐집니다. 여기에도 여러 가지 단계가 있는데 환상이 너무 선명할 때는 마치 생시처럼 보이며, 동영상처럼 장면들이 움직이며 연결되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단편적인 한 커트씩 받는 것이 보통인데, 색깔 역시 처음에는 흑백으로 보이다가 영이 더 열리면 칼라로 바뀝니다.

또 영귀가 열립니다. 영적인 귀가 열리면 바깥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주님의 음성만은 또렷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때로는 벼락같이 말씀하시기도 하고, 혹은 다정다감하게 당신의 뜻을 전해주십니다. 눈, 귀는 물론 영코가 열리기도 합니다. 예전 우리 영성원 집회 때 자주 주셨던 은혜인데, 영코가 열리면 축사 사역 때 소독약 냄새나 악취를 맡습니다. 두 가지 모두 성령님의 은혜로 맡아지는 냄새이며 소독약 냄새는 ‘치유하고 계심’을 나타내고, 악취는 악한 영이 성령의 불로 인해 탈 때 나는 냄새입니다.

또 영입이 열리면 예레미야 1장 9절 말씀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그 대로, 주님의 계시를 받아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뜻이 내 입술을 통해 계시될 때, 육적인 나는 내 입을 통해 역사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있습니다. 한편 사역을 받을 때 사람들이 소리 지르는 현상도 영입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도 악령이 나갈 때 고꾸라지고 크게 소리를 치면서 나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영입이 열린 사람에게는 성경에 기록된 그 현상이 그대로 일어나며, 열리지 않은 사람은 재채기나 눈물, 콧물 등을 통해서 나갑니다.

그런데 이렇게 소리를 지르면서 악령이 나가는 것도 사역 받을 준비가 된 사람에게서만 그렇습니다. 만약 사역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거나, 속으로 ‘이 사역자에게는 사역 받기 싫다’는 생각 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사역을 받을 지라도 악이 크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은 전혀 소리 지르지 않는데 다른 사람들이 소리 지르는 현상을 본다면, ‘아 저 사람은 안에 어둠이 무척 많은가 보다’라고 볼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스스로가 성령님께 사로잡히지 않아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고 이해하는 것이 맞습니다.

마지막으로 영심, 즉 마음으로 어떤 일에 대해 저절로 알게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무런 환시나 음성을 듣지 않았는데 그냥 내면으로 저절로 어떤 일이나 사람에 대하여 알게 됩니다. 또 영피부가 열리기도 하는데, 성령님이든 악령이든 피부로 먼저 느끼게 되는 경우입니다.


이렇게 하나씩 나열하고 세부적으로 모두 설명하자면 정말 시간이 부족하지만, 대략 큰 그림이 이렇습니다. 영의 세계를 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주님께서 계시의 영을 열어주셔야 합니다. 이렇게 주님께 영적 세계를 허락받을 있는 사람은 먼저 회개하고 성령을 받은 사람이어야 하고, 이들에게 주님께서 계시의 영을 은사로서 열어주십니다.



3. 하나님은 ‘영’ 이시니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이분을 만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영의 사람으로 거듭나고 영적 세계로 들어가야만 합니다. 주님과의 만남은 신학적으로 잘 정립된 이론을 따르는 것도 아니며, 오직 무릎을 꿇고 주님을 앙망하고 사모하는 자에게만 허락되는 고귀한 것입니다. 학식이나 재산이 필요한 것도 전혀 아닌데, 많은 사람들이 이 본질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놀랍고도 놀라운 신비의 세계가 있고, 인간이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하건만 사람들은 얼핏 듣기만 해도, ‘아니 하나님을 만나는데 꼭 그렇게 해야 하나?’라는 식으로 거부감을 갖거나, 처음 입문할 때 두려움을 갖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일단 영적 세계로 들어가면 우리는 하나님과의 참다운 인격적인 만남을 깨닫게 되고, 그러할 때 세상적인 관심을 놓을 힘이 생겨납니다.

우리는 누구나 육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돈, 명예, 권력 등 세상의 ‘좋은 것’들을 놓을 힘이 자기 자신에게는 없습니다. 처음부터 이런 세상에서 태어났고, 여기서 너무나도 오랫동안 깊이 길들여져 왔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주의 성령께서 나를 점점 장악하실 때, 50프로 이상 장악하시고 나아가 70프로, 80프로 점점 많이 우리를 장악하시면 하실수록, 그만큼 세상을 놓을 힘을 공급받습니다.


무엇보다도 영이 열린 사람과 안 열린 사람의 신앙은 차이가 납니다. 신앙인들 중에서도 ‘영적인 체험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체험은 신앙생활에서 정말 필수적입니다. 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래, 또 성실히 했어도 하나님을 참으로 영으로 만나지 못한다면, 그 신앙은 막연하고 바라보기만 하는 신앙생활에 멈추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더 나쁘게는 세상 살기가 불안하니까, 죽으면 내세가 있을지도 몰라서 보험을 드는 식의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러한 신앙으로 과연 주님의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주님의 일은 커녕 자신의 삶의 문제 앞에서도 무력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당신과 인격적으로 교제를 하고 사랑을 하자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주님께서는 애초에 우리 인간을 당신과 사랑을 주고받는 인격으로 만드셨건만, 우리에게 하나님은 여전히 너무나 멀리 계시는 존재로 받아들여집니다. 허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항상 우리를 더욱 깊게 만나길 원하시지만, 우리가 그 길을 제대로 몰라서 늘 쳇바퀴 도는 것과 같은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 러므로 우리가 주님을 얼마나 실질적이고 가까이 만날 수 있는지, 우선 교회 안에서의 재정립이 절실합니다. 전도도 중요하지만 이 시대의 교회 안의 성도들조차 주님과 긴밀한 교제를 하지 못한다는 안타까운 이 현실을 바꾸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그러면 이들 한명 한명이 용사가 되고, 이 용사들이 세상으로 나가서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 많은 일을 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4.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



자, 본문의 니고데모도 ‘거듭남’의 의미가 무엇인지 전혀 못 알아듣고 있습니다. 늙은 나이에 어떻게 다시 모태에 들어갔다가 나오냐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으로 이야기하시는데, 이 사람은 육으로 받아들이고 있기에 예수님의 말씀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 5절에서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는 놀라운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세례를 받으면 천국에 들어가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시길 ‘물과 성령으로 나’야 하늘나라를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즉 기도생활을 얼마나 했느냐, 십일조를 늘 했느냐, 교회에서 봉사를 얼마나 했느냐에 따라 하늘나라를 간다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목사도 권사도 어떤 직분에 있더라도 그것이 하늘나라를 가는 통행증이 될 수는 없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게다가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신 말씀에서 ‘내 뜻을 이야기한 것은 하나도 없다. 오직 성부 하나님의 뜻만 이야기했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 들어오는 조건은 단 하나입니다. 즉 물과 성령으로 새로 태어난 자여야 합니다. 여기서 물은 회개를 뜻하므로, 다시 말해 하늘나라는 ‘회개하고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 ‘예수님의 피로 죄 씻음을 받고 영으로 거듭난 사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시대에 막연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신 이야기로 계속해서 돌아가야 합니다. 예수님 사역의 시작 역시 ‘회개하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는 선포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하늘나라를 가지고 내려오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하늘나라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주기도문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에서 그 하늘나라를 가져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는 이 땅에 온전한 하늘나라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그 사랑의 선물로 하늘나라를 가지고 내려오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17장 20-21절 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따르면 하늘나라는 장소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물론 죽어서 가는 하늘나라는 존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늘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고 하셨을 때, 그 하늘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모든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내 가슴에 주님의 통치가 이루어져서, 내가 모든 자리에서 주님이 가라면 가고, 서라면 서는 삶을 산다면 다름 아닌 내게 하늘나라가 임한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대한 또 다른 중요한 말씀은 마태복음 12장 28절입니다 :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는 ‘귀신을 쫓아내면 하늘나라가 임한 줄 알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의 힘을 공급받아서 나를 장악하는 악한 영의 결박을 끊고, 그들을 세력을 몰아내고 완전한 회복이 이루어지면, 바로 그때가 하늘나라가 임한 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모두 이 하늘나라를 맛보며 우리 삶의 모든 저주가 떠나길 바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애는 성령님으로 인해 모든 묶인 곳이 풀리고, 그 다음에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세상을 위해 밀알과 촛불처럼 헌신하며 살다가, 주님께서 ‘이제 나 있는 곳으로 오너라’ 하시면 훌훌 옷을 벗듯 육을 벗고 나의 본래 집으로 가는 것 외에 없습니다. 또 이 땅에서 예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행하는 동안에도 주님은 늘 함께 계십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내 아들아, 내 딸아 힘들지? 울지 마라. 내가 힘을 주겠다’고 우리를 친히 이끌어 주십니다.



5, 성령으로 난 성도들의 삶



오늘 본문 마지막인 8절 말씀에는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고 나와 있습니다. 육적인 관점에서는 성령으로 난 사람과 영적인 것에 대해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육으로 난 것은 육이고 영으로 난 것은 영입니다. 이 둘은 분명히 다릅니다.

신앙생활도 육적인 신앙생활을 한다면 몸은 교회에 있되 그 삶은 항상 세상적인 것을 바라보고 가게 됩니다. 그러나 영의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삶에서 어려운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먼저 주님의 뜻을 받습니다. 맨 먼저 금식하고 무릎 꿇고 기도합니다. 간절히 매달리는 자녀에게 주님께서는 꿈으로라도 당신 뜻을 전해 주십니다. 혹은 지혜를 주셔서 좋은 생각을 나게 하시기도 합니다. 이런 일은 영의 사람에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기에 예를 들자면 한도 끝도 없지요.

이 렇게 한 걸음을 나가더라도 주님과 함께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주님의 통치를 받아 내 안에 주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나 한 사람에게 주님의 나라가 임하면, 그 나라를 주님께서 직접 책임져주실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 하나쯤이야’ 하고서, 현재의 안이한 신앙생활에 계속 머물지 마십시오. 마귀는 우리가 주님의 뜻에 따라 변화하는 것을 몹시 싫어합니다. 그저 현실 그대로 끝까지 변화 없이 죽길 바랍니다. 하지만 ‘나 하나로’ 세상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께 대적하던 사람이었는데, 그 까닭은 그가 신학과 지식으로만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에 전혀 영적으로 깜깜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가 다메섹에서 주님을 영으로 만났지요. 육의 눈은 감겨져 있는데 영안으로 주님이 예수님이심을 알고, 그 이후부터 그는 순종의 삶을 살아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했습니다.


오늘 설교 처음에 고 김준곤 목사님 이야기를 전해드리면서, 저는 주님께서 우리나라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다시금 보았습니다. 정말 우리나라만큼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나라가 세상에는 많지 않습니다. 원조를 받았던 국가 중에서 원조를 하는 국가로 발전한 나라는 오직 우리나라 밖에 없습니다. 제가 어릴 때 살던 촌에는 라디오 하나 있는 집이 동네에서 가장 부자였고, 어떤 집에 손님이 자가용이라도 끌고 오면 온 동네 아이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이렇게 지독히 가난하던 나라를 칭칭 감고 있던 물질의 저주를 하나님께서 풀어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더 열심히 믿으라고 그렇게 잘 해 주셨건만, 지금은 어느새 향락의 마귀를 붙잡고 있는 나라로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붙잡고 다시 한 번 영적 부흥과 대각성의 시대를 열어, 지금 이 시대에도 사도행전적인 기적을 맛보면서 놀라운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어야 합니다. 이제는 아무도 주님의 임재와 역사를 흠모하지 않는 시대이지만, 우리 각자 하나 하나가 주님의 용사이고, 신부이고 일꾼으로 이 땅에서는 짓밟히고 모진 삶을 살더라도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도록 기여하는 사람으로 산다면 희망은 여전히 있습니다. 작정 기도를 해서 마귀를 한 번씩 이겨보시기 바랍니다. 작정기도를 해서 주님의 힘으로 마귀를 쳐 이기고, 주님의 방법으로 문제가 풀리는 경험을 쌓아가면서 마귀가 두려워하는 주님의 용사로 승리하는 삶을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첨부파일
카테고리 서모세 목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