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모세 목사님/양사라 원장님 말씀

성경을 알기 쉽고도 깊이있게 배워보는 코너입니다. 영적 깊이가 더해지는 소중한 시간이되길 바랍니다. 아울러 말씀에 제시된 환상 등은 원장님께서 개인적으로 받으신 내용으로 다른 성도분들께는 다른 이미지로 계시해주실 수 있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제목 믿음으로 산 모세 (히 11:23-29)
작성자 기쁨
작성일자 2011-01-16
조회수 2993

믿음으로 산 모세 (히 11:23-29)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을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그들을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1. 세상의 부, 명예, 권력을 초개와 같이 버린 모세





모세가 태어나던 시기에 애굽의 왕 바로는 이스라엘 민족이 강성해지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 족이 아들을 낳기만 하면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자기 자식이 낳자마자 죽임 당하는 것을 보고 싶어 하는 부모가 세상 어디에 있겠습니까. 전승에 따르면 모세의 부모는 일부러 별거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에게 하나님의 계시가 내렸다고 합니다. ‘너에게서 민족을 해방시킬 선지자를 태어나게 할 것이다’라는 계시를 믿고 낳은 아들이 바로 모세였습니다. 부모는 갓난아기를 석 달 동안 숨겨놓고 키우다가 결국 힘에 부쳐,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는 아기를 역청을 바른 상자에 넣어 강에 띄워 보냈습니다. 이 아기를 바로의 딸이 건져내어 양자로 삼았습니다.

당시 바로에게는 아내가 없어서 그 딸이 실질적인 장자권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마음만 먹으면 애굽의 왕이 될 수 있었으리라고 요세푸스라는 역사가는 증언하고 있습니다. 애굽의 왕은 통치의 전권을 누렸음은 물론이고, 사람이 아닌 신으로 숭배되었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유모가 바로 친어머니 아니었습니까? 그래서 그는 어릴 때부터 자신이 히브리인임을 알았고, 그대로 제도권만 따라가도 부, 명예, 권력 그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었던 자리를 버렸습니다. 



사람은 다들 자기 소유의 아주 작은 무엇 하나도 내놓기를 참으로 아까워 합니다. 그런데 모세가 온 세상의 모든 권세를 초개와 같이 버릴 수 있었던 까닭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바로 그가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러한 세상의 정점에서 선뜻 내려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허나 주님의 영이 들어와서 믿음이 커지기 시작할 때 사람은 세상 것을 버릴 수 있도록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세상을 버릴 힘을 얻고, 또 어디서 무엇을 해야 우리의 믿음이 성장할 수 있는 것일까요?



먼저 로마서 10장 17절 말씀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처 럼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계속 들을 때 성장합니다. 여러분이 제 설교를 들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제가 단에서 세상의 재미있는 이야기만을 잔뜩 소개한다면 여러분은 설교에서 아무런 은혜를 전달받지 못할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만 그것은 영혼의 양식이 됩니다.

모세 역시 젖먹이 때부터 어머니 품에서 계속 말씀을 듣고 배웠습니다. 모세의 어머니는 아들을 믿음으로 가르쳤습니다. “얘야 지금 우리 민족은 짓밟히고 있지만, 하나님의 때가 차면 그분이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반드시 이끄신다고 약속하셨다”고 말입니다. 이렇게 믿음의 말씀이 모세에게 심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아마도 모세가 자라면서 어렴풋이나마 자신의 사명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으리라 봅니다. 이미 사명을 마음에 담고 있었기에, 그가 장성하였을 때 동족이 애굽인에게 맞는 것을 보고 그 애굽인을 죽인 것일테지요. 그런데 다음날 모세가 보니 히브리인들 끼리 싸우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이 상황이 너무도 안타까워 그들의 중재를 위해 ‘같은 민족끼리 하나가 되어야 하지 않느냐?’고 말을 했습니다.헌데 그들 중 전날 모세가 애굽인을 살해하는 것을 목격한 히브리인 하나가 모세에게 대들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두려운 마음이 든 나머지 미디안으로 도망을 갔지요.



어쩌면 모세는 사람을 죽일 때도 고심을 했을 것으로 같습니다. 모세는 자신이 하나님의선지자로 쓰일 줄을 알고 있었기에 큰일을 가지고 고심했지만, 우리 역시 매일 매일 삶의 크고 작은 모든 일에서 선택을 합니다. 그렇다면 ‘세속을 택할 것인가 주님을 택할 것인가’라는 선택에 직면했을 때의 과연 무엇을 택해야 하겠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모세는 무엇을 택했다고 나와 있습니까?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히브리서 11장은 흔히 ‘믿음 장’이라고도 불립니다. 우리 선진들이 어떤 믿음을 가지고 세상을 이겼는가가 이 장에 집약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믿음의 선진들 중 오늘 본문 말씀의 모세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상과 천국을 믿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었습니다.





2. 예수님 영접과 현세에 대한 죽음





여러분도 신약에서 예수님과 대화한 ‘부자 청년’ 이야기를 잘 아실 겁니다. 예수님을 찾아와 영생의 길을 묻던 이 청년의 마음 한편에는 ‘당당함’이 묻어 있었습니다. 사실 율법은 자기의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거늘, 이 청년은 율법을 빠짐 없이 잘 지켰다며 스스로를 거룩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그렇다면 너의 모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너는 나를 따라라’고 하시자, 그는 근심하며 그대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시켜 볼 때, 우리 역시 얼마나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해 왔는지를 깨우쳐야 할 것입니다. 정말 돈이 없는 사람이라면 '가진 것을 다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라'는 명령이 쉬웠을 겁니다. 어차피 가진 게 없으니 그 얼마 안 되는 소유를 버리는 것이 뭐가 어렵겠습니까. 그러나 가진 것이 많을 수록 버리기란 더더욱 어렵습니다.

이에 반해 성 프랜시스는 주님을 위해 철저한 버림을 실천했습니다. 그는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때문에 실제로 전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고 자신은 평생 초라하게 살았지요. 그리고 그의 모든 행적은 그가 죽은 후 하늘나라와 이 땅을 너무나도 아름답게 만들어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늘 이렇습니다. 현실 속에서 볼 때는 항상 바보 같고 손해 보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은 그 모든 행동에 있어서 현실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상급주심에 맞추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우리가 육으로 이 땅에 살고 있기 때문에, 현실의 것을 포기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또 엄밀히 보자면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는 세상을 버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놓을 힘’까지도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공급받아야 합니다. 끊임없이 기도하고 부르짖고, 말씀에 비추어서 나의 행실의 모자람을 애통하게 바라보고 “아버지, 제가 어찌하여 이 모양입니까? 제 스스로는 옳고 건전한 줄 알았는데, 말씀에 비추어보니 제가 왜 이리 더럽나이까?”하고 부르짖을 때, 나 자신이 미워지면서 저절로 스스로를 내려놓기 시작합니다. 그때 비로소 ‘성화’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주님을 영접한다는 건 한 마디로 현실에 대해 죽는다는 뜻입니다. 주님의 길을 따라가려고 하면 할수록, 이 세상의 논리와는 어마어마하게 반대되는 것을 실로 깊이 체험합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4장 4절로마서 8장 7절 말씀에서 ‘이 세상과 하나님과는 원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약 4:4)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롬 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우리 귀에는 여전히 ‘아무리 신앙생활 해도 뭐 그렇게까지 세상을 버려야 하겠느냐. 어차피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데, 이 땅의 것도 적당히 챙겨가며 신앙생활은 그에 맞게 조화시켜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이 더욱 그럴 듯하게 들립니다. 우리 자신도 속으로 그런 생각을 다들 조금씩은 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결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세상’을 따르는 것은 마귀 권세를 좇는 것이며, ‘내 제자인 너희는 거룩하라’고 하셨습니다. 거룩의 본래 뜻은 ‘분리된다’는 뜻입니다. 만약 제가 주님의 종이라고 하면서도 세상의 것과는 전혀 다른 ‘주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못한다면, 저 역시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저만 그렇습니까?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신앙생활을 몇 십 년 했다고 하면서도 거룩함이 드러나지 않고, 삶에서 예수님의 향기가 풍겨나지 않는다면 이건 무척 부끄러운 일입니다. 본질을 잃어버린 채 세속적인 신앙 안에서 옆 사람의 생활과 비교하면서 ‘아 나도 이만하면 비슷하지?’라는 식으로 적당히 안위하는 신앙생활을 보고 과연 주님께서 무엇이라고 하실까요?



우리가 세상을 버리기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욱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이 땅의 가장 낮은 곳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이 길을 가야하는가를 당신 사랑의 십자가를 통해서 먼저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눈으로 보면 ‘로마의 사형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십자가형은 사형 중에서도 가장 비인격적이며, 그 고통이 너무나 참담했기 때문에 로마 시민권자에게는 내려지지 않았던 형입니다.

이 수치와 고통의 형벌을 나의 주님께서 감당하셨는데, 내가 매일 ‘주님 사랑해요, 당신뿐이에요’ 하면서도 삶에서는 주님이 걸머쥐고 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지 않는다면, 그 사랑은 그저 입으로만 하는 사랑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곤란하면 바로 안색이 바뀌고, 조금만 불이익이 와도 벌써 불만의 마음을 품지나 않는지요. 심지어 어떤 사람은 ‘하나님, 저의 이 문제 해결해주지 않으면 신앙생활에도 지장 있습니다’라는 식으로 주님을 협박하려고도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마 10:24-25)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예수님께서 ‘주인인 내가 돌을 맞고 침 뱉음을 받았다면 종인 너희들이야 오죽하겠느냐’하는 말씀을 기억해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살면서 핍박을 겪는 것은 당연한 것이거늘, 그러한 핍박을 여러분은 얼마나 겪고 계십니까?






3.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썩어지는 삶





물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너희는 이 땅에서 죽도록 고생만 해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핵심은 이생의 삶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아는 믿음입니다. 영원한 것은 나의 속사람이며 하늘나라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 하면서도 현실에 믿음을 맞추려고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러한 믿음은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 현실을 잘 살고 싶어도 '주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아서 사는 것이 올바른 순서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때에 맞추어, 또 복을 받아도 우리에게 해가 되지 않을 때는 당신의 영광을 부어주셔서 우리가 모든 이에게 ‘증거’가 되길 원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영을 열어주시고, 모든 복과 영광도 함께 주시는 에베소서 3장 20절의 말씀처럼 ‘풍성하게 주시길 원하시는’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엡 3: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철저히 내가 주님 안에서 살 때, 의심치 않고 바라면 모두 받을 것입니다. 단 야고보서 1장 6-8절 말씀처럼 의심하지 말고 바라야 합니다.

(약 1:6-8)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여러분! 모세의 믿음을 보십시오. 주님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버려도 아깝지 않다는 그 믿음을 지닌 모세에게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맡기셨습니다. 우리 역시 이 세상을 살면서 궁극적으로 할 일은 주님 기쁘게 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형식적인 신앙이 아니라 요한복음 12장 24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말씀처럼 한 알의 밀알이 되어서 땅에서 썩어야 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이 시대 마지막 때이며, 주님께서 마지막 때의 추수꾼을 찾으신다’는 것에는 동의하면서도, 막상 저 자신에 대해서만은 먼 일처럼 생각합니다.

저는 가을의 낙엽을 떠올릴 때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너희의 인생도 저렇게 마지막 때에 가장 멋지고 가장 아름답게 이 땅을 수놓고 깨끗이 떨어져서 하늘나라로 오라’고 하시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지지부진하게 살다가 주님 앞에 섰을 때 뭐라고 이야기할 것인지요? 믿음으로 나 하나를 주님의 도구로 온전히 내어 바치는 삶, 우리 자신이 한 알의 밀알이 되어 풍성한 열매 맺는 삶을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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