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모세 목사님/양사라 원장님 말씀

성경을 알기 쉽고도 깊이있게 배워보는 코너입니다. 영적 깊이가 더해지는 소중한 시간이되길 바랍니다. 아울러 말씀에 제시된 환상 등은 원장님께서 개인적으로 받으신 내용으로 다른 성도분들께는 다른 이미지로 계시해주실 수 있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제목 사랑 1 (요일 2:15-17)
작성자 기쁨
작성일자 2011-01-03
조회수 3559

 

사랑 1 (요일 2:15-17)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1. 아가페 사랑

 

 

하나님은 우주를 어떻게 운행하실까요? 사랑만으로 다스리신다면 세상은 금세 엉망이 될 터이고, 만약 공의로만 다스리신다면 너무나 삭막해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주를 공의와 사랑으로 통치하십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사랑”을 주제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사랑도 크게 보면 네 가지 종류로 나누어집니다. 남녀 간의 사랑은 ‘에로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할 때의 사랑은 ‘스토르게’, 친구나 형제간의 사랑은 ‘필리아’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주님께서 가르치신 사랑은 이 세 가지의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말로는 똑같이 ‘사랑’으로 번역되지만,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3장 34절에서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고 말씀하셨을 때의 사랑은 친구끼리의 사랑도, 이성 간의 사랑도, 부모가 자식을 사랑할 때의 사랑도 아닙니다. 이는 ‘아가페’ 사랑을 가리키며, 아가페 사랑이란 하나님의 사랑을 뜻합니다. 아가페 사랑은 한도 끝도 없으며, 조건 없이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바로 이 사랑을 배워서 올라오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2. 사랑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세상에 있는 것들에 대한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을 뚜렷하게 가르고 있습니다. 요컨대 세상 것들에 집착하지 말 것이며 누구든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합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일 뿐이니, 우리가 정말 주님을 제대로 만나서 그 안에서 산다는 것은 이 땅의 모든 면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거기에 대해 진정 죽을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요한일서에는 전반적으로 사랑에 대하여 많은 말씀들이 계속 나옵니다. 헌데 사랑에 대한 정의는 우리가 기존에 생각하고 있던 것과 아주 다릅니다. 즉 요한일서 3장 2절-6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이미 구약에서 모세를 통해서 알려주신바 크게는 십계명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원래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신 모든 것이 계명이며, 이를 지키는 자만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칭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2장4절을 다시 보면 만약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말하는 자들이란 모두 거짓말쟁이라고 하였습니다. 현대인들의 신앙생활을 이 말씀에 비추어볼 때, 우리가 얼마나 부족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나 스스로 뼈저리게 반성해보아야 할 구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들 저마다 신앙 안에서 잘 살고 있다고는 하지만, 말씀에는 ‘너희들이 내 말씀에 따라서 살지 않았다면 그 안에는 진리가 없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스스로 주님 말씀을 죽자 살자 따르고자 달려간다고는 하지만, 스스로를 삼가 살펴보면 이 거룩한 말씀의 반의 반도 못 지키는 것 같습니다. 우리 성도들, 주님께서 말씀하시길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거짓말쟁이라고 하셨는데, 다들 계명의 4분의 1, 5분의 1 정도만 적당히 지키고 사는 것은 혹시 아닙니까? 하물며 세상에 푹 젖어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어떻겠습니까!

 

또 본문 말씀을 보면 세상에 속한 것은 주님의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들은 모두 육적인 정욕이며 자랑일 뿐이기에,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란 곧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면 세상의 가치를 쫓기보다 주님의 계명에 충실하고자 부단히 노력할 것입니다. 앞에서 계명이란 성경 속에 나오는 말씀 전부라고 하였는데, 구체적으로 보면 사랑하라, 용서하라, 희생하라, 성령 충만하라, 귀신을 쫓아라, 병을 고쳐라, 봉사하라 등등 주님의 가르침 모두입니다. 이 계명들을 모두 지켜야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사랑을 아는 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름 아닌 주님께서 정하신 ‘나를 사랑하는 자가 누구냐’에 대한 기준이 ‘내 계명을 지키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장 16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이 말씀에서 보듯,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압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예수님 십자가의 희생을 통하여 당신의 사랑을 확증하셨고, 우리는 이 사랑을 믿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이 사랑 안에 거하는 자들로서 진짜 사랑을 행해야 하겠지요.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명을 지킬 때 주님께서는 온전히 우리 안에 함께 지내신다고 말씀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2장 5절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든지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의 안에서 거할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이 완벽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그 사람이 하나님 안에 거하며, 하나님 또한 우리 안에 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삶은 한마디로 순종의 삶입니다.

 

 

3. 말씀의 거울에 비추어봤을 때, 우리는 얼마나 사랑하고 있습니까?

 

 

말씀은 거울이며 잣대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내 행실의 부족함을 알아내고, 내 믿음 역시 얼마나 허술한지 늘 점검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거울을 보고 얼굴에 무엇이 묻었나 발견하고 이내 닦아내듯, 우리의 삶을 비추어보는 가장 투명한 거울인 성경에 비추고 고쳐야 합니다.

 

특히 오늘 주제 본문 말씀에서 ‘사랑’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해온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깊이 묵상해봅시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은 아가페 사랑, 당신께서 아무런 조건 없이 십자가 매달리셨을 때의 사랑, 창조주께서 피조물인 우리 인간을 위해서 흘려주시는 피를 의미합니다.

이 사랑이 없었다면 인간의 운명이란 지옥으로 갈 수 밖에 없었으며, 이 땅에 삶도 마찬가지로 마귀에게 시달리며 저주 안에서 고통 받는 삶으로 끝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인간의 운명을 아셨기 때문에, 또 그 저주에서 인간을 구원하실 분은 오로지 당신뿐이시라는 걸 아셨기 때문에 그 가장 추악하고 가장 고통스러운 십자가 형벌을 친히 지신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사랑으로 구원받은 우리에게 주님께서 ‘사랑하라’고 명하셨을 때의 사랑은, 당신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과 똑같은 사랑을 뜻합니다.

 

여러분, 이 사랑에 우리 자신을 비추어봤을 때 우리는 얼마나 부끄럽고 부끄러운지요. 우리가 과연 주님께서 하신 사랑의 근처에도 가봤는지요. 또 말씀을 지킨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얼마나 순종했는지요. 요한일서 2장6절에 보면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하셨으니, 하나님 안에 사는 사람은 예수님이 사신 것처럼 행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의 본질이 무엇이며 그 삶을 사는 진실한 모습이 어떠한지 너무나도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1절부터 뭐라고 쓰여 있습니까? 내가 방언을 하고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그저 울리는 꽹과리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또 예언을 하고 산을 옮길만한 큰 믿음이 있다고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3절에 이어지는 말씀은, 내가 남을 구제하려고 몸을 불사른다고 할지라도 만약 그 행동이 사랑은 없고 자기 과시를 하기 위함이었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합니다.

4절 부터는 우리가 사랑을 알아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품성들이 무엇인지 적혀 있지요. 고린도전서 13장의 말씀들을 보면서 나는 어떻게 살았나 구절구절 마다 비추어봅시다. 우리는 참으로 이 말씀과 반대되는 삶만 살지는 않았는지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의 계명’을 지킨다고 하면서도 우리에게는 얼마나 시기와 교만이 몸에 배었는지요. 온유하지도 못하고, 오래 참지도 못하며, 무례히 행하는 모습들이 우리의 모습은 아닌가요. 예의바르고 친절한 건 어디서나 사랑의 표현일 수밖에 없는데 말입니다.

사랑은 또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내 이익, 내 명예를 추구하거나 권력과 물질을 가지려고 한다면 그 일은 주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또 우리는 성내지 않고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때 하나 짚어볼 것은 ‘성냄’과 ‘공의, 의분’은 구분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주님 일을 진정 내 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주님과 함께 살면서도 의분을 낼만한 일이 별로 없습니다. 주님 일이 잘 안되면 ‘내가 안하면 그만이지’ 하는 식으로 금세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님 일에 목숨을 걸고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은, 바로 주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의분을 냅니다.

 

이처럼 사도바울을 통해서 일목요연하게 드러나는 사랑은 세상에서 흔히 이야기되는 사랑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께서 성경 속에서 수없이 이야기해 오신 사랑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나 자세하게 가르쳐주는데, 주님 앞에서 ‘사랑이 무언지 몰라서 못했다’고 말 할 수는 없겠지요. 우리 모두 사랑을 실천하면서 이 품성 하나하나가 열매 맺히듯 다 나올 수 있습니다.

 

다시 고린도전서 13장의 6절을 보면,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고 하였습니다. 진리는 거짓이 하나도 없는 진실, 불의와 반대되는 말입니다. 내가 설령 아무리 이득을 본다고 하더라도 거짓된 것, 의롭지 못한 것과 함께 기뻐할 수 없는 자가 사랑하는 자입니다.

요즘 세상은 어디나 할 것 없이 야합이 횡횡한 시대이지만, 진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시편1장 1절 의 말씀처럼 악인의 길에는 같이 가지 않으며, 내가 아무리 손해를 본다고 하더라도 또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도도하게 주님의 진리를 걷습니다. 어떤 조롱을 받는다 하더라도, 진리와 함께 기뻐하며 불의는 조금도 가까이 하지 않으며 그저 외롭게 가는 겁니다. :

     (시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사랑은 또 모든 것을 참고 견딘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가야할 길은 이제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사랑을 실천하며 가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삶이란 현실적으로는 불이익이고 나 자신을 위해서는 남을 것이 별로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은 궁극적으로 놀라운 하늘의 비밀을 알 것이며, 온유한 자는 세상적으로 바보이고 짓밟히기 마련이지만 결국에는 세상을 차지합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신앙인에게 참으로 중요한 세 가지 가치인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서도 고르고 고르라면 사랑이 최고라고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사랑은 그리 만만하지도 쉽지도 않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을 이 땅에서 진짜 지키면서 살기란 무척 어렵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로 이 사랑을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저도 이 사랑의 계명을 완벽하게 지켜내며 살고 있어서 오늘 설교를 자신 있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늘 주님께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 원칙, 목표를 가르쳐 줄 줄은 알아야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함께 목표를 향해서 달려 나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같이 이 푯대를 향해 가지 않는다면, 신앙생활도 의미를 잃을 것이며 주님과 동행하는 삶도 살지 못합니다.

 

지금 이 시대는 더욱 더 기도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내 것만을 이기적으로 챙기고 사는 게 당연시 되는 무서운 시대가 된 것 같습니다. 성경에서도 말세에는 저마다 자신만을 사랑한다고 합니다. 제 부모님 세대 때만 해도 희생에 희생을 최고의 미덕으로 알고, 허리가 꼬부라져라 일하면서도 또 희생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참으로 말세에 가까운 것처럼 보입니다. 자식이고 형제고 부모고 할 것 없이 자기의 삶에 방해가 된다면 치워버린다는 보도가 심심찮게 들립니다. 얼마나 자기만을 사랑하면 그렇겠습니까. 마귀는 다른 게 아니라, 이러한 문화가 바로 마귀 문화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 삶을 살겠다고 하는 것은 다시 말해 ‘나는 죽고 없어지며 오직 주님과 사람들을 사랑하며, 주님께서 살아가신 발자취를 고스란히 따라가며 진리를 전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약속해놓고 자꾸 잊어버린 채 다시 또 ‘나, 나’를 찾아가는 게 용수철 같은 인간의 본성이지만, 그럴수록 ‘내가 살아있는 한 주님과 깊은 교제를 할 수 없음’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사랑의 길은 무척 바보스러운 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바보스러운 길을 살겠다고 주님과 약속하였습니다. 이 길을 끝까지 걸으면서 주님의 말씀을 지킬 때 주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나를 사랑하시며 흘리신 피를 지금 이 시간 믿음의 마음으로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첨부파일
카테고리 서모세 목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