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모세 목사님/양사라 원장님 말씀

성경을 알기 쉽고도 깊이있게 배워보는 코너입니다. 영적 깊이가 더해지는 소중한 시간이되길 바랍니다. 아울러 말씀에 제시된 환상 등은 원장님께서 개인적으로 받으신 내용으로 다른 성도분들께는 다른 이미지로 계시해주실 수 있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제목 성령의 음성 (히 3:7-11)
작성자 기쁨
작성일자 2010-12-21
조회수 2715

 

성령의 음성 (히 3:7-11)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에게 노하여 이르기를

   그들이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 도다 하였고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였느니라

 

 

 

1. 순종과 주님의 안식

 

 

우리는 이 땅에서 다 복되게 잘 살길 원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바라시는 ‘안식’에 드는 길은 세상의 것과 다릅니다. 본문에서 주님은 ‘오늘’ 음성이 들릴 때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말고 말씀에 순종하라고 하십니다.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의 음성은 두 가지 입니다. 먼저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경우가 있고, 다음으로 영이 열린 사람에게 개별적으로 응답을 주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두 경우 모두 성령님의 음성이 내게 들릴 때 그 분에게 순종해야 해야지, 강퍅한 마음이 들어서 불순종한다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안식, 그 복된 생활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여호수아 1장 8장 을 보면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하셨습니다.

또한 시편 1장 에도 주님 안에서 형통한 삶에 이르는 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하나 해 볼 수가 있습니다. "왜 이 시대에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다지도 많은데, 정작 많지 않은 것일까?" 왜 그럴까요? 본문의 말씀에서 주님께서 분명히 이르시길, 마음이 완고해서 주님께 순종하지 않으면 주님의 안식에 못 들어간다고 하십니다. 주님의 안식은 다름 아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패한 인간, 그 아담의 저주로 인해 버림받아야 마땅할 이 땅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이 분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갈 때, 우리가 저주로부터 해방되어 온전하고 영원한 생명 즉 주님의 안식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이들이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 문제 입니다.

 

 

2. ‘예수님을 영접함’의 의미

 

 

미국에서 ‘사람들이 전화통화 1분 동안 과연 어떤 말들을 하나’에 대해 통계를 낸 적이 있었습니다. 대화 내용의 5천 마디 중에 3~40프로를 차지하는 말이 ‘나’였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렇게나 오로지 ‘나, 나, 나의 행복, 나의 꿈, 나의 비전’을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의 인본주의적 삶이란 다른 무엇보다도 ‘나의 이익’만을 가장 우선시하는 삶입니다. 다들 그렇게 삽니다. 성서는 이러한 삶을 사는 사람을 일컬어 ‘아담의 후예’라고 합니다.

 

하지만 주님의 영접했다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2) 말씀에 기록된 ‘영접’은 먼 곳에 계신 예수님을 막연하게 믿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세례와 더불어 옛날의 인간, 나라는 존재 자체가 죽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 삶의 통치자가 ‘나 자신’이었던 삶을 포기하고 예수님께서 나의 왕이 되시어 나를 통치하시도록 하는 것이 영접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의 인생은 마땅히 어마어마하게 바뀌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믿는다면서도 원뿌리까지 바뀌지는 않은 생활을 신앙생활로 여기고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다음에 소개할 예화에 빗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국에서 어떤 30대의 남자가 뒤늦게 자신의 친부모를 찾았습니다. 알고 보니 그의 부모는 엄청난 부자였습니다. 이 남자는 그 전까지 늘 치약과 비누를 팔면서 생계를 연명했는데, 하루아침에 대궐과 같은 집에 잠을 자고, 매일 하녀가 시중을 들며, 저녁이면 리무진을 타고 파티를 가는 것이 일과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신분이 급격하게 상승된 이 사람은 어이없게도 아침마다 이 전의 허름한 옷을 갈아입고 거리에 나가 예전에 하던 그대로 치약과 비누를 팔았습니다. 그에게는 넥타이에 고급 양복이 너무나도 불편했고, 전에 입던 옷이 편안했습니다. 생활도 이전의 생활이 편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루 종일 물건을 팔다가 저녁이면 다시 대궐 같은 집으로 돌아 왔다고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에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것은 영적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그분과 인격적으로 늘 자유롭게 만난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오셔서 내 삶의 터진 곳이 모두 회복됨은 물론이고, 삶 자체가 어마어마하게 바뀌어서 아침이면 주님 안녕히 주무셨어요? 하고 친근히 주님과 바로 통화가 되는 삶을 사는 것이 주님을 영접한 삶의 기본입니다.

헌데 지금 믿는 이들이 가운데에도 그러한 일상을 실제로 살고 있는 이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렇기는커녕 아직도 원론적이고 기초적인 신앙생활만 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많은 이들이 이런 놀라운 삶을 실제로 살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 까닭은 앞에서 말한 ‘옛 나, 내 육신의 삶’을 죽이고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은사를 못 받아서 은혜 생활 안으로 못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내가 먼저 육적 삶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변화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육을 죽이면 죽일수록 온전하게 은혜 생활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당연하며, 그렇게 되면 은사 역시 마땅히 뒤따라옵니다.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온전히 주님께서 사신다면 은사는 무조건 받을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주님을 영접했다고 하면서 삶은 그대로 앞의 예화의 남자처럼 사는 사람들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사실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르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 입니다.

주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누가 오른뺨을 치면 왼뺨을 내놓고, 겉옷을 달라고 하면 속옷까지 줄 것이며,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지요. 이건 세상 사람의 기준으로 보면 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은 삶입니다. 하지만 주님을 영접했다 하면서 주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대로 마귀 자녀의 근성대로 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믿는다 하면서도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똑같이 원하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변화가 없다면 나를 장악한 악한 영이 떠날 리 없습니다. 원래 살던 대로 살면서 하나의 종교생활을 부수적으로 ‘첨가’하면서 주일 지키고 헌금 조금 하면서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한다면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접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3.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안식

 

 

본문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안식은 정말 말로는 도저히 표현 못할 만치 좋은 겁니다.

    (고전 2: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성경에는 주님께서 사람이 생각하지도 못 할 만큼 좋은 것을 예비해두셨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나는 이게 무엇인지 맛도 못 보고 도무지 감도 못 잡은 채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지금 내가 완전하게 성령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는 삶에 아직 이르지 못했다고 보시면 될 겁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러한 신앙생활은 형식적인 신앙생활입니다. 그렇게 살아서는 주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예배가 장엄하고 거룩한 모양새를 갖춘다고 하더라도 그곳에 주님의 임재가 허락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주님이 임재 하실 때에야 비로소 악한 영이 드러나고 영의 세계가 열립니다. 또 지금까지 우리의 생활을 장악하던 원수 마귀의 세력으로부터 해방되어 우리 생활이 참으로 바뀌고,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주님의 안식입니다.

 

나아가 주님의 안식 안에 사는 사람의 삶이 ‘편안함’과 ‘형통함’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안식 역시 세상적 의미의 안식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참다운 믿음 생활을 살기 때문에 마귀의 저주로부터 해방은 되었지만, 주님의 일을 위해서 내 스스로 안락을 내어 놓고 희생하는 데에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주님 안에 살며 주님 일을 하면서 받는 고통은 마귀의 묶임에 의해 끌려가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장성한 신앙인이 나아가야 할 단계가 이 단계일 것입니다. 이미 나의 통치자로 예수님을 온전히 영접하고 그분 뜻에 내 삶이 일체 되었으니, 우리의 신앙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 의 말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처럼 나는 죽고 예수님께서 내 안에 사시는 단계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나의 모든 생활의 지시자는 성령님이십니다. 우리는 반드시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성경 말씀에 순종하는 것도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것이며, 영이 열려서 레마로 듣는 것도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초청하고, 신뢰하며 나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따를 때 놀라운 사건이 일어납니다. 기적이 일어나고 하늘나라가 내 것이 되는 삶이 그때부터 열립니다.

   (요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마태복음 12장28절에 뭐라고 적혀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영의 세계를 알지 못하면 결코 속속들이 이해될 수가 없는 구절입니다.


 

 

4. 영적인 삶을 유지하라

 

 

이제 마지막으로 이미 영적인 삶 안에서 성령님과 충만한 교제를 나누는 성도들을 위한 중요한 구절을 짚고 오늘의 설교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종종 놀라운 영적 체험을 한 후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발견되곤 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에 대해 성경 말씀은 엄중하게 경고합니다 :

   (히 6:4-6)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성령님과 더불어 하늘나라의 놀라운 체험을 맛본 후에 다시 세상과 손을 잡은 사람들은 다시 회복되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의 행위는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것과 똑같기 때문 입니다. 아직 신앙이 미성숙하여 영적 체험을 못한 사람이라면 모를까, 주님의 은혜를 받아 불치병을 치유되거나 삶의 문제가 해결된 이후에 주님을 등진다면 이들은 다시 회개할 기회도 얻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 자리에 있는 성도 여러분은 주님과 만났으며 그 경험을 가장 소중하게 마음의 중심에 지키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에 적혀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 이 시대에 하나님을 영적으로 확실히 만났지만, 그 체험을 유지 관리하지 못한 자들에 대한 선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전능자 하나님을 어떻게 만났습니까. 홍해를 가르시고,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함께 계시며, 만나를 내려주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곧 그들은 날마다 기적을 맛보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하나님께 대들고 주님을 시험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그들이 불평할 때 불 뱀이 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불 뱀은 다름 아닌 마귀를 뜻합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고도 불평했던 이스라엘 백성은 불 뱀에 물려 수없이 죽었고, 게다가 음란한 짓을 하여 하루아침에 2만 3천명이 죽었으며, 결국 약속된 땅에 들어가지 못한 채 광야에서 죽음을 맞았습니다.

 

참다운 믿음 생활 안에 들어왔다면, 놀라운 그 기적의 삶을 맛보았다면 이제 남은 일은 이를 유지하고 생명이 다 하는 날까지 주님과 동행하며 희생의 길을 가는 것뿐입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을 이르러 ‘복음에 빚진 자’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도 복음에 빚진 자들입니다. 사실 주님을 영으로 만나는 삶이 모든 이에게 허락되지는 않습니다. 그렇기에 영으로 주님을 만난 엄청난 은혜를 받은 이들은 더더욱 주님을 실망시켜드리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는 착한 삶을 사는 것도 무척 중요합니다. 그러나 복음의 핵심은 주님을 영으로 만나고 그 진리를 깨달아 이 땅에서 내내 주님과 동행하는 삶일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의 종교를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게 아닙니다. 주님은 ‘내가 너를 너무나 사랑한다. 나와 함께 살자’ 라고 말씀하시며 오셨습니다.

우리가 영이신 주님께 순종하고 다시는 세상에서 살던 대로의 ‘나’를 주장하지 않는다면, 이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안식과 영원한 생명을 준비하시고, 우리 몸속에 함께 사시면서 이 땅을 화목케 하는 일을 이루십니다. 바로 하늘나라를 위해 내 안에서 일하십니다.

 

이 순간부터 어렵더라도 결심을 해야겠습니다. 주님이 나의 주님이시고, 성경 말씀 전체가 성령님의 음성이니 여기에 순종하겠습니다. 오늘 마태복음 5장의 말씀을 보십시오. 마태복음 5장의 말씀은 차라리 성경에 없었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지키기가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이 세상 논리가 아니라 주님의 통치를 따르며, 또 세상 눈으로 볼 때 말도 안 되는 성경의 말씀일 지라도 그 전체를 ‘아멘’으로 받아들일 때 신앙의 기본이 제대로 정립될 수 있습니다. 어렵더라도 내가 일단 ‘아멘’하면, 예수님께서 내 안에 들어 오셔서 왕으로 통치하시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분으로부터 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과 지혜와 능력을 보급 받고 모든 형통함을 받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각자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주님의 참 안식의 드는 삶을 날마다 사시길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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