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모세 목사님/양사라 원장님 말씀

성경을 알기 쉽고도 깊이있게 배워보는 코너입니다. 영적 깊이가 더해지는 소중한 시간이되길 바랍니다. 아울러 말씀에 제시된 환상 등은 원장님께서 개인적으로 받으신 내용으로 다른 성도분들께는 다른 이미지로 계시해주실 수 있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제목 예수님의 이름 (행 16:31)
작성자 기쁨
작성일자 2010-12-18
조회수 2219

 

예수님의 이름 (행 16:31)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바울 사도가 전도 여행 중 억울한 일로 감옥에 갇혔습니다. 감옥에 갇혔지만 그는 낙심하거나 좌절치 않고, 기도하고 찬양만 하였지요. 우리 하나님 사람의 특별한 점이 무엇 이냐면, 세상적으로 볼 때는 가장 불행하고 처절하게 짓밟힌 상황에 처해 있을 지라도 오히려 현실을 보지 않고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심과 또 그분이 나를 위해 영원한 것을 준비해두신 것’ 보면서 찬양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만약 바울 사도가 좌절에 하고 불안해 했다면 옥문이 열렸을까요? 아마 지진이 일어나지도 차꼬가 저절로 풀리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상황에서 주님을 신뢰하고 경배와 찬양을 드릴 때, 하늘 문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옥문이 열리고 차꼬가 풀리자 간수들은 너무나 놀랐습니다. 죄수들이 탈출하면 어차피 자신들은 죽을 몸이기에 차라리 자결을 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때 바울 사도는 그들에게 도망가지 않는다고 안심시킵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일을 경험한 간수에게 이제 바울 사도는 사람으로 보지 않고 선지자이며 하나님의 사자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려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행 16:30) 하고 묻습니다.

이 질문에 바울이 한 대답이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입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이름"이라는 주제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구원의 유일한 통로이신 예수님

 

 

요즘 텔레비전을 보면 각 종교의 지도자들이 모여서 타 종교의 중요한 축제일에 서로 축하를 전하는 모습을 요즘에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같은 일을 도모하며 단합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러한 풍경들은 세상적 관점에서 보면 썩 괜찮아 보입니다. 물론 ‘너도 인정하고 나도 인정하자’는 입장을 취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우리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상호 인정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타 종교 사람들은 기독교를 두고 ‘배타적’이라는 비난을 거세게 하고 있지만, 모든 비난을 감수하고 우리의 믿음을 지킬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사도행전 4장 12절 말씀에 적혀 있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말씀에 이르길,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어떠한 다른 이름도 구원을 받을 만한 이름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기에 기독교는 타 종교와 동등한 선에서 병존할 수가 없습니다. 진리는 여러 개가 아니라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 본체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

 

 

그렇다면 예수님의 이름이 대체 무엇이기에 그리도 다른 종교의 신과 다르다는 것일까요. 빌립보서 2장 6절부터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을 천천히 묵상해 보시겠습니다.

    (빌 2:6-11)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예수님은 본체가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십니다. 즉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고, 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공자, 석가, 마호메트와 동일 선상에 놓여지는 소위 ‘사대 성인’ 중 하나가 결코 아닙니다. 그 근본이 하나님이신 분입니다. 그래서 당신을 믿는 이마다 구원을 주실 수 있으며, 구원 문제에 대해서는 다른 논리를 적용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본체가 하나님 자신이셨던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는 어떻게 사역하셨습니까? 왕 중의 왕이신데도 모든 것을 비워놓고 종처럼 순종하셨습니다. 그것도 십자가를 지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반은 하나님으로 반은 사람으로 사셨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 이름에 천하 모든 것이 무릎을 꿇게 하셨습니다(빌 2:10).

 

이런 까닭에 우리가 모든 사역과 기도에 예수님의 이름을 붙이는 것입니다. ‘내 이름’으로 사역하거나 기도를 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질 리 없습니다.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부 아버지와 통화를 할 때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늘 대전에 기도를 올리고, 원수 마귀를 쫓아내는 사역을 할 때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묶임을 받고 떠날지어다.’ 하며 그분의 이름을 철저히 의탁합니다. 창조주께서 만드신 유일한 법칙이 이것이기에, 이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골로새서 1장 15-17절 말씀을 보면,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셨으며, 만물이 예수님으로부터 창조되었습니다. 즉 예수님이 하나님이기에 모든 구원은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3. ‘태초에 예수님이 계시니라” – 사랑 때문에 십자가를 지신 창조주

 

 

이러한 의미에서 요한복음 1장 1-14절 말씀에서 ‘말씀’과 ‘빛’을 ‘예수님’으로 바꾸어 읽어도 내용은 정확히 일치합니다. (※ 괄호 안은 성경 원문)

 

태초에 예수님(말씀)이 계시니라

이 예수님(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예수님(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예수님이(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예수님으로(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예수님이(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예수님(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예수님(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예수님(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예수님(이 빛)이 아니요 예수님(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예수님(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예수님이(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예수님으로(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예수님이(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예수님의(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성도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느끼십니까? 제가 지금 ‘말씀’과 ‘빛’ 부분을 예수님으로 바꾸어 읽었는데 다 맞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찌 타 종교와 타협이 가능하겠습니까? 특히 고린도전서 12장 3장에 따르면 오직 주님의 영을 받은 사람만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우리 믿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시어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 사역을 하셨고, 부활 승천 이후 성령을 주셔서 지금 이 순간 우리의 가슴 속에 살고 계심을 압니다. 이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이제 세상과 너희들은 구별되었고,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여라’ 하고 끊임없이 말씀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창조주께서 내 안에 살고 계신데, 과연 우리 삶이 도대체 얼마나 바뀌어야 할 것인지도 뼛속 깊이 깨달아 지십니까?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사랑했으면,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당신 스스로 비천하고 또 비천한 인간의 몸을 빌어 이 땅에 오셨겠습니까? 이것은 요한복음 3장16절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말씀에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했는데, 그러면 ‘이처럼’은 얼마큼이나 될까요? 하나님 자신이 가장 추악한 십자가를 질만큼 인간을 사랑하셨습니다. 자식들이란 부모가 나를 위해 얼마나 희생하였나를 알 때 비로소 효도하기 시작하는 법입니다. 세상 인간 사이도 이러한데, 하물며 예수님은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우주적 법칙에 따르면 죄를 짓는 자마다 죽고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따라서 그분께서 우리에게 그 정당한 대가를 요구 하신다면, 세상에 목숨을 부지할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당신 자신이 피를 흘리고 우리 죄를 대속하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말로만 사랑하는 건 사랑이 아니지 요. 나의 가장 소중한 것, 가장 내놓기 힘든 걸 내놓는 것이 사랑입니다. 모든 인간이 저마다 가장 중하게 여기는 것이 목숨입니다. 그렇기에 가장 천하고 죄인 된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영원한 왕, 왕 중의 왕이 당신께서 세우신 우주적인 법칙을 지키면서도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스스로 인간으로 태어나 십자가 사역을 담당하셨습니다.

 

아까 읽었던 요한복음 1장 14절 말씀,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처럼 예수님을 통해서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합니다. 그러므로 이분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으며, 이 진리와 함께 오늘 본문의 말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을 다시금 새겨보시면 좋겠습니다.

 

 

 

4.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

 

 

어떤 종교에서는 신을 일컬어 ‘조화주’라고도 하고, 각 종교마다 가장 높은 곳에 하나님과 비슷한 개념이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꼭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며, 또 이 진리는 성부-성자-성령이 삼위 일체이시기에 성령을 받지 않으면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저도 주님을 온전하게 영접하기 전에는 예수님이 여전히 사대 성인 중 한 사람으로 여겨졌고, 너무 예수님을 신격화시키는 게 아닌가 하며 의문을 가진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제가 주님을 만나 보니까 이 자체가 진리라는 것을 시인하여야 했고, 무릎을 꿇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님을 통하지 않으면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을 깨쳐나가면서, 주님 걸으신 발자취를 그대로 걷는 제자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성령님은 자기 자신을 증거하지 않으시고 예수님과 성부 아버지를 증거하십니다. 성령님은 인격체이시지만, 항상 당신과 분리되지 않고 하나이신 다른 위, 즉 예수님과 아버지를 증거하십니다. 이 세 위격은 본래 분리되지 않고 하나인데, 다만 역할적으로 나누어진 것뿐입니다. 따라서 요한복음 14장 6절 말씀 그대로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가 없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구약과 신약을 통틀어 보자면, 성부 아버지와 예수님께서는 창조주가 아니고서는 어떠한 신도 감히 하지 못하는 권능을 펼치시면서 ‘나만이 신이다’라는 메시지를 우리 인간에게 전해주셨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하지만 종교에는 2등 착한 종교, 3등 착한 종교 같은 서열이 없습니다. 성령이 아니면 모두 다 이미테이션에 불과합니다.

 

지금도 똑같이 성령으로 임하시는 주님의 권능은 우리에게 똑같은 깨달음을 주십니다. 특히 이 시대에 성령님으로 살아계신 주님께서는 결코 우리가 막연한 가운데 믿기를 요구하시지도 않습니다. 그와는 정반대로 매일 매일 위로하시고, 불로 생수로 또 계시로 체험을 주시며 ‘힘을 내라, 너는 세상 사람이 아니다, 내가 너와 늘 함께 한다.’고 실질적인 주님과의 만남을 허락하십니다. 이 하나만을 가지고도 우리는 목숨을 내걸고 주님을 증언해야 마땅합니다.

허울뿐이고 막연한 종교생활이 아니라 내가 진짜 삶 속에서 예수님을 만났다면, 주님을 알리고 싶어서 소리치며 밖으로 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바로 요한복음 4장의 사마리아 여인처럼 말입니다. 이 여인은 세상 속에서는 부정한 여인이었지만, 주님을 만나고 삶 자체가 모두 변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계신 성도 여러분들도 모두 사마리아의 여인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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