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모세 목사님/양사라 원장님 말씀

성경을 알기 쉽고도 깊이있게 배워보는 코너입니다. 영적 깊이가 더해지는 소중한 시간이되길 바랍니다. 아울러 말씀에 제시된 환상 등은 원장님께서 개인적으로 받으신 내용으로 다른 성도분들께는 다른 이미지로 계시해주실 수 있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제목 보물을 하늘에 쌓아라 (마 6:19-34)
작성자 기쁨
작성일자 2010-10-19
조회수 2245

 

<보물을 하늘에 쌓아라> 마 6: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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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물질은 주님께서 하시는 마지막의 마지막 테스트입니다. 신약의 부자 청년 이야기를 성도 여러분도 익히 아실 겁니다(마19장; 막10:17-22; 눅18장). 이 청년은 아마도 경건한 집안 출신이었던가 봅니다. 지키기가 몹시 어려운 율법도 잘 지켜왔으며, 예수님께서도 그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영생의 길을 묻던 이 부자 청년은 예수님께서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르라 하셨을 때, 물질을 포기하지 못한 채 슬피 근심하여 돌아갔습니다.

 

물질은 주님을 섬기는 데 참으로 큰 장애요인입니다. 우리는 세상적 으로도 부자로 살고 주님도 섬길 수 있다고 하고 싶지만, 주님께서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며 단호하십니다.

 

 육적 인간이 가진 재물을 모두 정리하기란 실제로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심지어 구약 출애굽기를 보면 바로가 10가지 재앙을 당한 후인데도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하길, ‘물질만 놔두고 떠나라’고 했을 정도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마귀가 마지막까지 놓지 않는 것 또한 물질입니다. 특히 영적인 사람조차도 물질의 유혹에서 자신을 지키지 않으면 한순간에 무너지고 맙니다. 세상을 다스리는 것이 돈이라는 생각이 우리에게 이미 익숙하기에, 하나님이 살아계신 걸 아는 성도들조차 물질을 내기가 참 어렵습니다. 허나 하나님은 우리가 아까운 마음으로 재물을 바치길 결코 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재물 중에서도 가장 귀한 것을 기쁜 마음으로 드리길 바라시며, 완전 십일조가 원칙입니다.

 

 

그런데 본문 중간에 갑자기 눈은 몸의 등불이라는 말씀이 나오는 것에 주목해봅시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마6:22-23).

 

이 구절은 대단히 영적인 말씀입니다. 눈이 어두우면 어두운 판단을 하며, 내가 온전하면 바른 판단을 할 수 있으니, 이로 인하여 물질을 하나님께 기꺼이 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앞에서는 물질이 주님의 마지막 테스트라고 하였습니다. 아까워하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은 한편으로 주님을 만난 후 ‘일차적’으로 하시는 테스트이기도 합니다. 세상에는 주님이 돌보셔서 먹고 사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방인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주님의 자녀가 된 다음에는 주님이 주시는 복을 받고 사는 길에 들어섰기에 하나님이 아버지인 사람들, 즉 주님의 자녀들은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해 걱정을 말라고 하십니다. 아니 ‘걱정을 해서는 안된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6:31-32).

 

몸 전체가 밝으려면 눈이 성해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구원만큼 귀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우리는 이제 전혀 다른 차원으로 영적 눈을 뜬 자들입니다. 우리는 멸망을 향해 굴러가는 거대한 수레바퀴의 일부로 몸이 끼어 있다가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 바퀴에서 튕겨져 빠져 나왔습니다. 이 감격에 비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눈이 없어도, 귀가 없어도,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어도 오로지 감사할 뿐입니다.

 

그렇기에 물질이 주님이 주시는 첫 번째이자 마지막 테스트라 한다면, 이는 주님께서 세상에 그렇게나 큰 영향력을 미치는 물질보다 ‘네가 나를 정말 더 사랑하느냐?’하고 물으시는 셈입니다. 이 생에, 살아 있는 이 시간에만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물질이 없으면 시간과 정성을 바치면 됩니다.

 

더불어 물질을 보는 우리의 시각 자체가 완전히 바뀌어야 합니다. 물질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수단으로 주어지는 하나의 복으로 여겨야 할 것입니다. 이미 받은 걸로 족하고, 필요하면 채워주실 것이라 바라면 됩니다. 남을 부러워할 이유도 전혀 없는 것이, 나는 그보다 말할 수 없이 귀한 주님과 사랑을 나누고 있지 않습니까.

 

이 세상이야 말로 내 땅도 아니며 오히려 주님과 사랑 관계에 들어와 있는 내 마음과는 전혀 다르게 돌아가는 곳,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일 뿐입니다. 이러한 마인드가 내 중심을 차지한다면 들꽃을 아름답게 입히시는 주님께서 ‘내가 너희를 반드시 책임지리라’ 하신 말씀을 고스란히 나에게 하시는 말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너는 들꽃과는 아예 차원이 다른 내 딸이야, 내 아들이야’ 하실 겁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값으로 따지면 아주 보잘것없는 참새 한 마리조차 아버지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마10:29).

 

이렇게 말씀하시는 주님 앞에서 ‘나는 어느 정도로 주님께 의지하고 내놓을 수 있나’ 하고 각자 스스로 물어 보아야 하지 않을런지요. 인생사에서 가장 중요한 게 먹고 사는 일이라고들 합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주님 안에 산다고 일하여 먹고 살지 말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무엇을 하든 우리가 주님 중심으로 행하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얼마든지 조력자를 붙여주시고, 잘 살 방도를 마련해 주십니다.

 

제 힘만으로는 아무 것도 제대로 하질 못하는 유치원생의 부모를 떠올려 보십시오. 하물며 육신의 부모가 제 자식을 그리 돌보는데, 전능하시며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 내 아버지이십니다. 우리 인간도 아무리 성인이 된다 한들 제 힘만으로는 무엇을 제대로 못합니다. 이럴 때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모두 주님 발 아래 내려놓으십시오. 아무래도 노후를 대비하자면 물질만은 다 못 바칠 것 같다는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럴 때 우리의 믿음이 바뀝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이러한 우리의 믿음에 역사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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