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체험

저는 이곳에 와서 제가 주님의 택함 받은 종이라는 것을 알고 은사를 받고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열심히 다니고 있는 성도입니다. 비록 성령영성기도원이 저에게는 처음이지만 이곳에서 살아계신 참 주님을 만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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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타협이 안되는 좁은 길의 구원
작성자 cbd0266
작성일자 2015-07-15
조회수 2534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사람이나 국가를 막론하고 거기에는 서로 간에 온갖 갈등과 대립이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이러한 대립과 갈등과 분쟁들은 개인 혹은 국가가 서로 타협점을 모색하며 또 조금씩 양보도 하면서 해결점을 찾을 수 있지만, 만약 그렇지 못하면 서로 충돌하여 싸움하거나 국가 간에는 전쟁으로까지 비화하기도 합니다.

교회에서는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니 우리가 심각하지 않은 조그만 죄를 자주 짓는 정도라면 언젠가 심판대 앞에 섰을 때 그것이 큰 죄는 아니기에 하나님께서는 어느 정도 용인해 주시고 적당한 선에서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도록 허락하실 거라고 모두가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받기 위한 조건에는 하나님께서 적당히 양보해주는 타협이라는 것은 절대 없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 모두 구원받아 천국에서 영원히 복된 삶을 누리기를 원하시기에 심판만큼은 더욱 공의롭게 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만일 우리가 죄 문제를 처리하지 못하여 정결하지 못한 영혼인 상태로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여 오직 하나님의 용서라는 사랑에 의해 천국에 입성하게 된다면 거기는 우리와 같은 수많은 죄성이 가득한 영혼들로 넘쳐나기에 아름답고 성결한 천국이 아니라 타락하고 죄악으로 점철된 추하고 더러운 곳으로 바뀌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룩하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 온갖 혼탁한 죄로 가득 찬 천국은 절대 허용하실 수 없기에 당연히 심판만큼은 엄위와 공의로 판결하시게 됩니다.

그러나 이 땅에 살 동안은 아무리 세상 죄에 찌들어 있다 할지라도 우리가 진정한 회개만 한다면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하게 죄 씻음 받아 누구든지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크신 은총입니다.

결국 타협이란 어느 정도 조그마한 죄는 인정하고 수용해줄 수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으나 회개는 어떤 조그만 죄도 결코 인정해줄 수 없다는 하나님의 단호한 의지를 따르는 것이며 세상을 향하던 길에서 완전히 하나님께 돌아선 것을 의미합니다.

또 설령 하나님께서 죄악된 우리에게 천국에 들어가는 은혜를 베푸신다고 가정을 해볼지라도 그곳은 물과 기름이 섞일 수 없듯이 죄로 물든 우리 영혼이 거룩하고 정결한 흰 세마포 옷을 입은 성결한 천국 백성들과는 도저히 서로 어울릴 수 없는 것이 천국의 특징이며 원리입니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가 어쩔 수 없이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거기는 천국과 지옥 외에 이 땅과 같이 적당히 거할 중간지점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정결하게 하려고 세상 죄를 조금이라도 허용하지 않는 좁디좁은 구원의 길을 강조하시며 계속하여 그 길을 걸어갈 것을 명령하십니다.

그러면 신약성경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조건과 좁은 길을 외치는 것이 많이 나오는데 그중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한 번 보고자 합니다.

○ 마5:17~20에서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려고 오셨다고 했는데 그 당시 유대인들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자기 의가 강하여 누구보다 이를 지켜 행하려고 하였습니다.

물론 그들은 자기들의 전통과 율법과 관습에 따라 참 진리로 오신 예수님까지도 부정하며 잘못된 신앙으로 일관하는 믿음의 행태를 보였지만 그 열정과 노력과 행위는 그 어떤 종교인보다도 더 열심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의가 바리새인들의 의보다 더 나아야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열정과 노력하는 행위보다 우리가 더 열심을 내어야 하며 자기 의를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의를 이 땅에서 이루어가야만 구원에 이를 수가 있는데 이것이 절대 쉽지 않기에 구원의 길은 좁다고 하겠습니다.

○ 마5:22에서 “형제에 대하여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형제자매지만 가까운 사람에게 화가 나면 누구든지 무심코 이러한 말을 던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으로 지옥에 갈 정도의 무서운 말을 내뱉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가 이러한 언어를 입에 달고 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누구든지 이러한 조그만 죄에서 자유로울 자가 얼마나 될까요. 그래서 천국 가는 길은 좁다고 하겠습니다.

○ 마6:14에서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한평생을 살면서 많은 사람과의 대인관계 속에서 온갖 갈등을 겪기도 하며 마음에 상처도 받습니다.

이것이 쓴 뿌리가 되어 본인도 모르게 마음속 깊이 상처로 굳어진 사람이 많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마음속에 한으로 응어리가 맺혀 있기에 자기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절대 용서하지 못하고 원한과 반감과 적대감이 쌓여 마음과 영혼이 거기에 묶여 있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교회는 열심히 다녀도 이러한 남을 용서하지 못하는 심령으로 굳어진 사람들이 예상외로 많습니다. 이러한 마음이 용서하는 마음으로 다시 회복되는 것은 필요합니다.

남을 용서한다는 것 한가지라도 나 자신을 십자가에 온전히 내려놓지 않고는 불가능하기에 이 길은 좁다고 봅니다.

○ 마6:24에서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주님은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세상도 추구하고 하나님도 섬기면서 천국에 들어갈 방법은 절대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적지 않은 신앙인들이 이러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귀가 주는 유혹에 이끌려 세상 축복과 명예와 성공에 마음을 쏟고 있는 신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렇게 세상과 타협하면서 천국 가는 방법은 절대 없기에 구원의 길은 좁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마7:2에서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했는데 후자의 비판은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말합니다.

비판이란 남을 판단 정죄하는 것을 말하며, 올바른 믿음생활을 하기 위한 분별과는 그 의미가 전혀 다릅니다.

우리는 평소에 자기만의 잣대로 남을 판단하고 평가하며 심지어 정죄하는 죄를 두려움 없이 저지를 때가 적지 않습니다.

이러한 비판하는 죄에서 자유로울 자가 이 시대는 정말 적다고 보기에 구원받는 자도 적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비판은 나의 구원과 직결되기에 저부터도 이러한 죄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오늘도 소망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미혹이 도사리고 있기에 올바른 믿음생활을 하기 위한 선한 분별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비판이 아닌 분별은 철저히 해야 우리의 구원을 약속받을 수 있습니다.

○ 마7:21에서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했는데 이것은 입술로만 주여 외치며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뜻입니다.

즉 우리가 고백하는 말과 믿음에는 그에 따른 행함이 반드시 있어야 그 믿음이 진실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인정이 될 수가 있으며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 시대 교회는 행함을 강조하면 율법주의자로 매도당하며 자기들만의 교리에 따라 오직 말씀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교회들이 적지 않습니다.

믿음이란 반드시 그에 따른 열매가 나타나기 마련인데 이러한 행함이 따르는 살아있는 믿음을 보여주는 자들이 이 시대는 그렇게 많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심판대에서 우리가 세상에 있을 때 선악 간에 행한 모든 행위를 보고 판결을 하십니다. 입술로만 주님을 외치고 믿음에 따른 행위인 선한 열매가 그동안 없었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너무나 많은 사람이 믿는다고 하지만 믿음에 따른 선한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이 언젠가는 하나님으로부터 외면을 당하게 될 것이며 이러한 이유로 볼 때 결국 구원으로 가는 길은 좁다고 하겠습니다.

○ 마7:23에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이 구절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고 권능을 행했지만 주님께서 외면하시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도무지라는 말은 원어에서는 처음부터라는 뜻입니다. 즉 권능을 행했지만 주님께서는 처음부터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어떻게 보면 능력은 받았어도 직접 주님을 만나보질 못했다는 의미로도 유추해볼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를 모르신다고 하면 절대 천국 갈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우리를 아신다고 주님께 인정을 받으려면 반드시 그 명령과 뜻대로 사는 자라야 합니다. 이것은 하루하루 정말 지키기가 쉽지 않은 좁은 길임은 분명합니다.

○ 마10:37~39는 주님보다 가족을 더 우선순위에 두거나 또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는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위해 자기 목숨까지도 버리는 자가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이 마지막 때 이만한 믿음을 가진 자를 찾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이러한 조건은 구원받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라 최소한도 구원을 받기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기가 절대 쉽지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마18:3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이 말씀은 어린아이들과 같은 의심하지 않는 순수한 마음을 우리에게 강조한 것이며 우리의 모든 마음과 삶을 완전히 주님께 의탁해야 한다는 것이며 주님을 전적으로 믿지 못하는 불신앙을 경계하라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믿는다고 하지만 수시로 찾아오는 믿음에 대한 의심과 믿음이 연약해짐을 얼마나 자주 경험합니까. 이러한 연약한 믿음과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이 부족한데 어떻게 하나님께 인정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구원의 좁은 길을 가려면 온전한 믿음과 영원한 것이 보이지 않아도 믿어지는 그런 순수한 믿음이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 마19:24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부자 청년은 영생을 얻기 위해 예수님을 찾았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십계명을 다 지켰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정말 대단한 믿음입니다.

그러나 이만한 믿음을 갖고도 자기가 가진 재물에 대한 집착으로 그 청년이 예수님을 떠난 것에 대하여 예수님이 직접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서 바늘귀란 옛 이스라엘이나 중동지역에서 외적을 막기 위해 토성을 쌓고 밤늦게 귀가하는 여행객이나 상인들을 위해 성의 정문이 아닌 쪽문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 쪽문을 말합니다.

이 문은 겨우 사람이 통과할 정도여서 낙타를 들여보내기 위해서는 무릎을 꿇려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어야 겨우 통과할 수 있기에 약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이 매우 힘들다는 표현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지금 시대도 마찬가지로 믿음생활은 철저히 하는 사람은 많으나 자기 손에 움켜쥔 물질은 놓지 못해 온전히 주님을 따르지 못하는 자들이 교회 내에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천국 가는 길은 좁다고 봅니다.

○ 마19:29 구절은 예수님을 위하여 부모 형제 자식을 버린 자가 영생을 얻는다는 내용입니다. 이 말씀은 세상 그 무엇보다 주님을 최우선으로 따르지 않으면 결코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나의 구주와 나의 왕이 됨으로써 내가 주인이 아닌 주님이 나의 주인으로 바뀌어야 구원의 길을 갈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것은 구원받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절충이나 타협은 있을 수가 없는 명백한 진리에 속하는 말씀이라 볼 수 있습니다.

○ 마22:11~13에서는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으나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을 보고 임금이 그를 내어 쫓으라는 내용이며 더불어 청함을 받은 자는 많으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예복이란 성도들의 올바른 행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위의 구절은 아무리 열심히 믿어도 그 믿음에 따른 마음과 행실이 좋은 열매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결단코 천국에는 갈 수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선한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데 적당히 타협하여 천국에 이르는 길은 없습니다. 이 땅에서 선한 열매를 맺는 삶이 쉬울 것 같으나 절대 쉽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려고 작정하면 그때부터 마귀들이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방해를 하기에 우리에게는 매일같이 어려움이 닥쳐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늘 깨어서 마귀들을 대적하는 길만이 구원의 좁은 길을 가는 것이 되기에 청함을 받은 자는 많으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고 하겠습니다.

○ 마25:30은 달란트를 사용치 않은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는 내용인데 여기서 말하는 달란트는 우리가 받은 재능 은사 능력 등을 말하며 전도에는 필요한 것으로써 이것으로 이 땅에서 온전히 쓰임 받으면 천국에서는 상급에 해당하는 것으로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는 우리의 구원에 관계되는 것으로 직결시키므로 모두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내용인 줄 압니다. 우리는 각자가 받은 달란트는 다 있지만 모두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그것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주님께 쓰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오히려 묻어두고 있는 사람들이 지금 시대는 더 많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는 우리가 받은 달란트에 대해서 확실히 계산해야 합니다. 이것은 정말 두렵고 떨리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상급이 많다 적다가 아니라 천국에 가느냐 못 가느냐의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하나님께 책망받는 부분이 될 수 있기에 정말 염려해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그래서 구원은 타협과 절충이 안 되는 좁은 길이라고 하겠습니다.

○ 마25:35~46에서 이 구절은 지극히 보잘것없고 나약하며 어려움에 처해 있으나 별로 눈에 띄지도 않으며 관심도 받지 못하는 어려운 이웃인데도 그들에게 무관심하고 도움을 주지 못했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내려지는 형벌을 말하고 있습니다.

46절에서 이러한 자는 무익한 종으로 영벌에 들어간다고 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동안 주위의 이웃 중에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많이 보아 왔지만, 저부터도 얼마나 무관심하고 그냥 지나왔는지 정말 회개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극히 작고 어려움에 처한 이웃에게 도움을 별로 주지 못한 경우는 누구에게든지 그러한 경험이 있을 것이며 또 우리가 늘 겪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영생에 이르지 못하는 죄에 해당한다고 하니 얼마나 무섭습니까. 그래서 구원의 길은 가기가 정말 쉽지 않다고 봅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 중에서 어떤 부분은 나와 맞지 않는다고 너무 경시하는 경향이 있으며 ‘설마 그럴 리가’ 라고 하며 무시해버립니다.

심판대에서는 주님이 하신 말씀이 우리를 심판한다고 했습니다. 오직 두렵고 떨며 기도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봅니다.

○ 막8:34~35에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져야 하며 주님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치는 자가 구원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교회에 열심히 충성 봉사 헌신하며 예배에 충실하고 전도와 맡은 바 사명을 잘 감당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지금 시대 교회에서 전해지는 복음의 주장과는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자는 너무나 어렵고 좁은 구원의 길이며 후자는 누구든지 교회에 충실하면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살지 않고도 얼마든지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넓은 길의 복음이며 구원입니다.

이러한 미혹된 말에 속아 영원히 후회하는 자들이 되지 않기를 이 시간도 간절히 바랍니다.

○ 막9:43~47에서 이 구절은 손과 발과 눈이 범죄하면 그것을 제하여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이 말씀은 천국은 우리에게 조그만 죄가 있어도 결코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며 결코 절충이나 타협이 통하지 않는 단호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일상사에서 마음으로나 행동으로 짓는 죄가 조그맣다고 할지라도 수시로 짓게 됩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마음으로도 짓는 이러한 죄들이 우리의 구원을 가로막는다는 사실을 알 때 정말 구원은 좁은 길이며 회개 외에는 어떤 다른 방법도 없기에 정말 두려워해야 합니다.

○ 눅9:62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이 뜻은 열심히 복음을 좇아가면서 자꾸 세상에 미련을 두고 그 마음을 못 버린 자를 말합니다.

열심히 신앙생활은 하면서 세상 미련을 떨쳐버리질 못하고 세상에 마음을 두거나 따라가는 사람들이 교회에는 정말 많습니다. 여기서 자유로울 자가 지금 시대는 그다지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평신도뿐만 아니라 교회의 중직자 혹은 지도자 신분이면서도 세상 온갖 물질과 명예와 권세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믿는다고 하면서도 결국에는 구원에 이르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 눅13:24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도 들어가지 못할 자가 많다는 구절입니다. 우리나라의 교인들은 외국보다 믿음에 대한 열정은 대단합니다.

그러나 그 많은 교인 중에서 종교인은 많지만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는 진정한 믿음의 사람들은 그렇게 많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진실로 구원받기 위하여 세상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전심으로 노력하는 자들이 교인 중에서도 있기는 하지만 그들마저도 모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고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에 들어가는 길이 얼마나 어렵고 좁은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 눅17:1~2에서는 남을 실족케하는 자는 화가 있으며 차라리 연자맷돌을 목에 매이우고 바다에 던지우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일상사에서 우발적이든 고의든 남을 실족케하는 말들을 상처를 주는 깊이의 차이는 있으나 많이 합니다.

이럴 경우 상대방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할 때도 있지만 보통은 그냥 넘겨버릴 때가 많습니다. 상대방은 나의 말로 깊은 상처를 입고 실족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는데도 나는 전혀 눈치를 못 채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말과 행동이 우리의 구원에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말씀이 분명히 성경에 있는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도 간과합니다. 진실로 성경 말씀을 믿는다면 너무나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입과 말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구원받기는 너무나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 요3:3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3:5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예수님은 분명히 거듭난 자만이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에 해당이 된다고 유대인의 관원인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그동안 세상 적으로 살던 모든 것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진심으로 주님 앞으로 돌아오는 회개가 일어날 때 비로소 성령에 의해 새롭게 변화가 일어나는 근본적인 회심을 말합니다.

지금 시대 이러한 진실한 회심을 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주님은 원하시지만 정말 교회에서도 찾아보기가 어려운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거듭난다는 것은 말로는 쉬울지 모르나 실질적으로 우리의 삶에서 회심한다는 것이 그렇게 흔하고 쉬운 것은 결코 아닙니다.

따라서 구원받기 위한 조건에 들어가기가 정말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 롬8:9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이 구절은 성령이 우리 속에 내주하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즉 내 속에 성령님이 계시는가 혹은 안 계시는가에 따라 우리의 구원이 확정됨을 말합니다.

우리가 진실로 회개하지 않고는 세상 죄에 찌든 더러운 육신에는 거룩하신 성령님이 절대 들어오시지 않기에 무엇보다도 먼저 온전한 회개를 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회개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초자연적으로 우리에게 부어져야 가능하기에 구원의 길은 좁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상으로 위에서 열거한 것 중에서 한가지라도 지켜나가기가 우리에게는 절대 쉽지가 않은데, 이러한 모든 조건을 동시에 지켜나가야 우리들의 구원이 가능하기에 천국 가는 길이 얼마나 좁고 어려운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 이를 악물고 오직 내 속에 계신 성령님을 의지하여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모시고 따라간다면 어떤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모두가 구원의 여정을 꿋꿋이 밟아 천국에 입성하는 영화를 누릴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모두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늘 함께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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