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체험

저는 이곳에 와서 제가 주님의 택함 받은 종이라는 것을 알고 은사를 받고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열심히 다니고 있는 성도입니다. 비록 성령영성기도원이 저에게는 처음이지만 이곳에서 살아계신 참 주님을 만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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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국교회가 전하는 구원교리에 대한 소견
작성자 cbd0266
작성일자 2020-04-13
조회수 155
오늘날 한국교회가 잘못 전하여 수많은 교인들을 멸망으로 이끄는 잘못된 구원의 교리에 대해, 전부는 잘 알지 못하지만 그 중에 제가 일부분 깨닫게 되는 생각을 한 번 말씀드려 보고자 합니다.


 

우리 믿는 자들의 궁극적 목표와 소망은 예수님을 잘 믿어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모두가 열심히 주를 섬기며 믿고자 하지만 말씀에 비추어볼 때 구원받는 것은 그렇게 쉽지가 않는 것 같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사실만 보더라도 신구약을 통틀어 믿는 자들 중에 극히 소수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만약 내가 평생을 교회에 헌신하고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위해 살아왔는데 구원에서 탈락된다면 이보다 더 억울하고 후회되는 일은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과 나와의 일대일의 관계인데 만약 심판대 앞에서 하나님이 나를 모르신다고 한다면 이보다 더 비참하고 안타까운 일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에 관한 명확한 기준이 무엇인지 정확히 깨닫는 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공평의 하나님이십니다. 심판대 앞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의구심이나 억울함이나 불만이 없도록 명확하고 공의롭게 판정하여 구원을 결정하시기에  어느 누구도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구원에 관해서는 이의를 제기할 수가 없다고 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 구원의 정확한 잣대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교회에서는 교리와 성경지식에 근거한 각 교단들의 기준과 방편대로 구원에 대한 조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여러 조건들이 정말 우리의 구원에 합당한 기준이 되는지 아니면 각 교회들의 애매모호한 주장인지를 한번 알아보고자 합니다.

대다수 정통교단에서는 교리에 근거해서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시인하고 믿기만 하면 구원은 받은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갈라디아서나 로마서의 말씀대로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은 맞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교회에 등록한 신자들은 예수님을 믿기에 모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것과 상반되는 구원받을 자가 적다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과는 정면으로 위배됩니다.

진리이신 예수님이 성경에서 선포하신 모든 말씀은 우리의 구원에 대한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정말 믿기만 하면 모두가 구원은 받는 것일까요? 이러한 사변적인 믿음은 천차만별이라서 구원에 적용하기가 절대 쉽지가 않습니다.
 

자동차 필기시험과 같이 79점의 믿음이면 천국에 못 들어가고 80점 짜리 믿음이 되어야 천국에 들어간다고 가정한다면 이것은 절대 공평치가 않으며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 불만을 가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좋기에 가능하고 믿음이 1% 부족하기에 천국에 합당하지 않다라는, 크고 작음은 명확한 구원의 조건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회개하지 않고는 천국에 합당치가 않은데 회개가 1% 부족하여 천국에 합당치가 않다고 가정한다면 이것도 공정한 심판은 아니라고 봅니다.

거룩해야 천국에 갈 수가 있는데 주위 사람보다 약간 덜 거룩하여 천국에 못간다면 이것도 불공평합니다.
 

세상을 이기는 삶을 살아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데 본의 아니게 세상을 99%만 이기는 삶을 살아서 천국에 못간다면 이건 또 얼마나 억울할까요.
 

나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천국에 적합한데 십가가를 100% 온전히 지고 가지 못해서 천국에서 탈락한다면 이 또한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세상과 부딪히면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어느 단계까지 감당해야 구원의 기준에 합당한지 이것도 명확하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천국에 합당한데 그 사랑이 1% 부족하여 천국에 미흡하다면 이것은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요.

세상 죄가 있다면 천국백성으로는 합당치가 않은데 완벽하지 못한 우리들이 정말 어느 정도까지 깨끗해져야 기준점에 들어갈까요?

우리는 회개한다면 천국에 들어간다고 했는데 회개를 해도 하나님께 인정되지 않는 죄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물론 회개가 우리의 구원에는 너무나 중요하지만 애매모호하고 감당키 어려운 것은 무조건 회개로 밀어붙이며, 오직 회개만이 구원의 투수인 것인양 하나님의 사랑을 빌미삼아 무조건 용서만을 간구한다면 이것도 공평의 하나님과는 거리가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의롭다(이신칭의)고 보시고 구원을 결정하시는데 만약 우리의 의로움이 하나님의 기준점에 아주 조금 미달한다면 이것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자비를 베푸셔서 그 의로움을 천국에 합당하도록 1% 더 끌어올려주실까요?

내 형제와 주위 이웃들의 영혼을 내 몸같이 사랑하고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해야 천국에 합당한 삶이라고 볼 수 있는데..

만약 이러한 삶이 조금 부족하여 하나님 마음을 서운케 하면서도 과연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영으로 알고 만나는것이 구원의 첫걸음인데 조금 덜 깊이 만나고 친밀함이 아주 약간 부족하다면 어느 정도 친밀해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1% 정도의 만남과 100%의 완전한 친밀함이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전부 천국에 들어간다고 한다면 이것은 너무나 넓은 길이라고 할 수 있으며 주님이 말씀하신 좁은 길은 결코 아니기에 친밀감으로는 사실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기준점은 정하기가 어렵지 않나 합니다.

주일예배를 빠짐없이 드리며 온전히 충성하여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사람과 열심히 섬기지만 조금 부족함으로 하나님께 인정되지 않는다면, 이것도 공정한 구원의 잣대가 될 수 없다고 봐야 합니다.

이외에도 구원의 조건에는 수없이 많은 의문을 우리들이 가질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들은 중요한 사실들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즉 구원이란 여러 가지 조건의 많고 적음이라는 기준에 맞춘다면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가 올바르고 정확히 적용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많다 적다가 아니라 오직 있다 없다라는 것에 그 기준점을 맞춘다면 하나님의 공평과 공명정대하심에 훨씬 더 적합할 것이라고 봅니다.

성령충만하다는 것과 조금 덜 충만하다는 것도 구원의 기준에는 합당치가 않은 것 같습니다. 믿음과 사랑의 크기도 기준이 아니며 세상을 이기는 것도

그 기준을 가늠할 수가 없으며 얼마나 거룩해야 그 크기를 인정받는지도 모르며 매일같이 자아를 죽이고 주님만을 따라야 하는데 나자신을 십자가에 얼마만큼 내려놓아야 인정되는지도 기준이 애매한 것 같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이 판정하시는 여러 가지 조건들의 크고 작고 많고 적음만을 가지고는 심판대 앞에서 하나님의 공평하심을 적용하며 수긍함을 인정하기가 어렵지 않나 생각합니다.

내 주머니에 동전이 있다 없다는 것은 명확합니다. 비행기 표를 안가지고 있다면 그 시간에 비행기를 탈 수 없는 것은 확실합니다. 무당이 그 안에 신이 없다면 그는 선무당이며 가짜입니다.

많고 적음이 아니라 이렇게 있느냐 없느냐는 확실함을 증명합니다.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는것이지 있는 듯 없는 듯 애매모호하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말씀에도 고후13:5처럼 예수님이 영으로 우리 안에 계시지 않는다면 우리가 버림 받은 자라고 확실한 선을 그었으며, 8:9에서도 성령이 우리 안에 안계시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있느냐 없느냐에 구원의 기준을 맞춘다면 우리의 구원을 판가름하기가 훨씬 용이하지가 않을까 합니다. 즉 성령이 우리 안에 있고 없음이 구원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봅니다. 다시말해 우리가 가장 먼저 성령을 받은 후에 믿음생활을 해야만 주님께 인정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약 내 안에 성령이 없다면 아무리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고 거룩해지려고 몸부림치고 세상을 이기고 맡겨진 십자가를 지려고 해도 절대 내 힘으로는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가 없습니다.

날마다 나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고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의 도움으로 순종해야 하는 삶을 살아야 매일같이 구원의 좁은 길을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내 안에 성령이 안계셔서 내 힘으로 구원에 이르려고 하는 것은 내 자아를 매일같이 십자가 앞에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내 의가 살아서 약동하는 것을 말하며 하나님 없이도 내 의지로 구원에 이르려고 하는 교만한 생각과 삶을 사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열심히 노력해도 공자 맹자 소크라테스 석가모니와 같은 세상적인 거룩함에 이르는 것으로 하나님과는 전혀 무관하게 됩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서 그 뜻에 따라 매일같이 이웃과 하나님을 사랑하며 믿고 순종하며 주님과 친밀해지며 거룩한 성품을 닮아가며 세상을 이기며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며 내 몸과 마음과 영혼이 천국에 합당한 성품으로 변화되어갈 때  비로소 그 모습 그대로 천국으로 이어지는 것이 구원으로 가는 올바른 길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러한 은혜가 함께 하시길 오늘도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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