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체험

저는 이곳에 와서 제가 주님의 택함 받은 종이라는 것을 알고 은사를 받고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열심히 다니고 있는 성도입니다. 비록 성령영성기도원이 저에게는 처음이지만 이곳에서 살아계신 참 주님을 만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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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믿음과 구원의 관계
작성자 cbd0266
작성일자 2016-03-16
조회수 1236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쳐주시면서 소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라고 하신 것은 그 믿음을 보시고 병도 나으면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그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기에 합당하다는 말씀인데 그러면 예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의 수준은 어떤 기준을 두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믿음이 크다고 하니 주위의 사람과 비교하여 믿음이 80점 이상이니 천국에 들어가고 79점밖에 안되니 천국에 못 들어간다는 의미에서 믿음이 크다고 말씀하신 것은 절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공평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예수님께서 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말씀하신 것은 주님과 그 사람의 개인적인 관계를 인정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믿음이란 주님과의 개인적인 관계에서 출발하기에 남이 인정해 준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께서 인정해 주셔야 그 믿음이 구원받기에 합당하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전이었기에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고 인정(이신칭의)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 예수님이 오신 후로는 이러한 믿음과 더불어 성령의 강림으로 말미암아 반드시 거듭남의 변화도 있어야 구원에 들어설 수가 있음을 성경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 시대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구원받을만한 믿음은 도대체 어떠한 것인지 그저 단순한 믿음만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포괄적인 여러 조건이 다 함께 갖추어진 것을 참믿음이라고 하는지 이것을 정확하게 깨닫는 것은 우리 영혼의 미래에 결정적으로 중요하기에 한 번 알아보고자 합니다.

구원받아 천국에 간다라고 하는 것은 우리 영혼이 가는 것을 말하지만, 이 땅에 있을 때 혼과 육신이 선악 간에 행한 모든 것들이 우리 영에 고스란히 영향을 주기에 하나님의 기준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하면 우리의 영은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구약시대는 믿음이 큰 기준이 되었기에 조금은 덜 복잡한 면은 있다고 보겠으나 지금 시대는 믿음을 기준으로 하되 그에 수반되는 여러 가지 조건들이 같이 충족되어야 하기에 구원이 한층 더 복잡해지고 다단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입술로 고백하고 오직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갑니까? 아닙니다. 당연히 그에 따른 순종과 행함이 있어야 하나님은 그 믿음을 인정하십니다.

또 아무리 믿음이 좋다고 할지라도 천국에 합당한 품성으로 변화되지 않으면 인정받기가 심히 어렵습니다.

우리가 순간의 실수나 우발적으로도 죄를 지을 수 있으며 이것은 그때마다 회개를 하면 되겠으나 계속하여 습관적으로 아니면 고의로 죄를 범한다면 이것도 천국에는 부적당합니다.

우리는 모두가 죄인이며 이 세상 죄 가운데 섞여 늘 죄를 밥 먹듯이 짓고 살아갑니다. 이렇게 세상 죄를 습관적으로 지으며 더불어 하나님도 같이 믿는 것 자체를 하나님은 인정하시지 않습니다.

인간은 천성적으로 누구나 쉽고 편하게 살려고 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다녀도 적당히 하나님을 믿고자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옳게 믿기가 너무 힘이 드니 세상과 타협하여 절충하여 믿으며 천국에는 가리라고 하는 신앙관을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이러한 적당 편의주의식의 믿음도 하나님은 인정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는 누구든지 크고 작든 차이는 있겠으나 각자에게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맡겨진 달란트를 충성스레 사용할 임무가 우리 모두에게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게을러서 아니면 귀찮아서 혹은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어서 무시하고 땅에 묻어두고 사용치 않는다면 이것은 상급의 유무가 아니라 구원과 직접적 연관이 있음을 성경은 달란트 비유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참믿음은 어떤 것인지 그 외에 어떠한 삶을 살아야 구원받기에 합당한지 완전한 설명은 어렵지만, 저의 생각을 한번 말씀드려 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천국에 간다라는 것은 예수님의 거룩한 신부로서 천국 혼인 잔치에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을 만나야 하고 만나서 대화하면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알면 신뢰하게 되고 믿음이 생깁니다.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을 비로소 사랑할 수 있으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의 지식과 논리로 하나님을 알고 믿는 것은 사람들에게는 인정이 될지 모르나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믿음으로 인정을 하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본질은 혼이 아니라 영이기에 지식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과 더불어 우리의 영으로 만나고 알고 믿고 사랑하는 것이 있어야만 인정을 해주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는 모두가 혼적인 존재입니다. 영과 혼은 차원이 다르며 그 소통되는 흐름의 주파수도 전혀 다른 차원에 속하기에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의 혼과는 교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과 만나고 영과 대화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조상 아담은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가 단절되었고 그 후손인 우리도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가 단절된 채 영은 죽은 상태로 모두가 혼과 육신이 중심이 되어 이 땅에 태어납니다.

만약 우리의 영이 살아나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영으로 만날 수가 없기에 모두가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또 고전 2:11에 사람의 일은 사람만이 알듯이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영만이 안다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은 그 누구도 알 수 없고 오직 성령님만이 아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혼적인 인간은 하나님을 만날 수도 알 수도 없기에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그러면 유일하게 하나님을 아시는 성령님이 우리를 만나 하나님을 알려주시면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희망과 가능성이 생깁니다.

성령님은 거룩하신 분이기에 더럽고 죄악으로 가득 찬 우리에게는 들어오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담의 불순종으로 원죄를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났으며 계속하여 자범죄를 짓는 죄인들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죄악에 빠진 우리가 깨끗하게 죄를 씻음 받으면 정결해진 우리의 몸과 마음에 거룩하신 성령님이 오실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깨끗해질 방법은 오직 회개밖에 없습니다. 예수님도 세례요한도 믿고 회개하라 하지 않고 먼저 회개하고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회개란 그동안 세상을 향한 삶이 U턴하듯이 하나님께로 완전히 돌아선 것을 말하며 죄와 더러움으로 얼룩진 몸과 마음이 깨끗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거룩하다고 할지라도 수시로 혹은 본의 아니게 얼마든지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순간적인 실수들은 그때마다 나의 머리와 입술로 고백하고 뉘우침으로 얼마든지 회개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근원적으로 있는 원죄나 나도 모르게 조상 대대로 내려온 유전적인 온갖 죄들은 평생에 한 번은 크게 완전한 회개를 해야 합니다.

이러한 회개는 내 힘과 노력만으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죄인을 회개시키려고 왔다’고 하셨습니다.

즉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하늘로부터 회개의 영이 초자연적으로 부어져야 진정한 회개가 터지는데 이것은 오직 예수님에게서 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키 위해 이 땅에 오셨으며 우리의 몸과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피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찾고 구하고 두드리지 않으면 절대로 구원의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회개의 영을 부어주시겠지라는 경우는 절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이것만큼은 하나님도 건드리지 않습니다. 우리의 의지를 동원하여 회개의 영을 부어주시기를 간절히 매달리며 철저히 부르짖는 자에게 하나님은 긍휼을 베풀어 부어주십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그 귀한 보혈을 흘려주셨다는 깨달음이 이천년 전이 아닌 현재 이 시간 시공간을 초월하여 내 심령과 마음 깊이 뼛속까지 사무치고 철저하게 깨달아질 때 아! 내가 정말 죽을 죄인이구나 나 같은 못나고 추한 죄인 때문에 죄 없으신 거룩하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간절한 울부짖음이 비로소 내 심령 깊숙이 터져 나오며 그동안 알게 모르게 지은 모든 죄를 토설하며 주님께 죄 용서함을 빌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진정한 회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이러한 회개가 터지면서 눈물 콧물이 비 오듯이 바닥에 떨어지며 죄를 토설하며 고백하며 주님께 죄 용서함을 빌었는데 어떻게 내 몸에서 이렇게 많은 물이 흘러나오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아랫배 깊숙한 곳에서 정말 황소 같은 우렁찬 울음이 터져 나왔는데 내가 황소인가 착각할 정도의 소리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내 속에 잠자던 영이 처음으로 깨어날 때의 소리였다고 했습니다.

물론 모든 회개가 전부 이렇게 터진다는 것은 아니며 조나단 에드워드나 찰스 피니 등등 과거 유명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남들이 모르는 조용한 회개를 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같이 좀 유별나게 회개가 터지는 경우가 더 많다고 봅니다. 이러한 회개가 터지면 그와 동시에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피가 우리의 죄악된 몸에 뿌려지며 그동안의 세상 온갖 죄악에 물든 몸과 마음이 깨끗해지고 정결함을 입게 됩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가 깨끗함을 입는 것은 관념적이거나 상징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의 세계에서는 실제로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거룩하신 성령님은 비로소 우리 속에 들어오셔서 내주하시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님이 제일 먼저 하시는 일은 그동안 죽어 있던 우리의 영을 깨우시는 일을 합니다. 그러니까 회개와 성령님의 내주와 영이 깨어나는 것은 동시에 일어난다고 봐야 합니다.

성령님으로 인해 죽었던 우리의 영이 살아난 것이 “옛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즉 거듭남(중생)을 말합니다.

그리고 살아난 내 영에 성령님은 제일 먼저 말씀하시기를 지금까지는 너 자신이 주인이었지만 이제는 예수님이 너의 주인이시다고 새롭게 가르쳐 주십니다.

이것은 그동안 옛 자아인 내가 주인이었는데 이제는 주님이 나의 주인으로 내 안에 계시며 주인이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영으로 성령님과 예수님을 만났고 성령님과의 대화로 예수님을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이때 비로소 참믿음이 생기게 되는데 이것은 영으로 만나고 알고 영으로 예수님이 나의 주와 구주가 된 것이 믿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머리와 지식과 논리로 믿어왔지만, 이제는 영으로 예수님이 믿어지게 되었습니다.

고후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이 말씀을 쉽게 해석하면 너는 믿음이 있는가 확인해봐라 예수님이 영으로 네 안에 안 계시면 너의 믿음도 가짜이고 너는 천국에 못 간다는 무서운 소리입니다.

즉 예수님이 영으로 내 안에 주인으로 계시는 것을 내 영이 알게 될 때 이것이 비로소 진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롬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이 말씀도 지식과 논리로 믿는 것을 말함이 아니라 예수님이 내 안에 계셔서 나의 주인이시라는 것이 나의 영으로 믿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즉 거듭나서 영이 깨어난 자가 스스로 고백하는 것을 일컫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진정한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을 신뢰하는 전적인 마음이 생기며 그때야 비로소 나의 영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을 할 수가 있게 됩니다.

이러한 진실한 사랑만이 결국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영이 하나님을 만나고 알고 믿음이 생기고 사랑하게 되는 것을 우리의 혼이 알게 되는 능력을 직관력이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직관에 의해 내 영이 깨닫고 알고 믿는 것을 파악할 수가 있습니다.

거듭난 자는 영이 깨어났기에 그 차이는 있어도 자기 주위에 어떠한 영적인 존재가 왔는지를 조금은 알게 되는데 영이 완전히 열리지 못하고 직관이 발달하지 못하면 영의 세계를 잘 감지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이 완전히 열리고 그 세계에 민감하고 빨리 자라며 직관력도 발달한 사람은 영의 세계를 매우 잘 알게 됩니다.

마음이 순수하고 단순하게 잘 믿으며 감정이 풍부하고 감성적이면 매우 유리합니다. 그러나 합리적 논리적 지식적이며 지성적인 사람은 영의 세계에 들어가기가 무척 힘이 듭니다.

그러므로 여성들은 이런 면에서 매우 유리하며 남성들은 불리한데 특히 지식적 합리적이며 논리적인 사고를 하는 지식층인 남성일수록 이런 세계를 알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깊이 연구하고 논리 정연한 사고로 성경에 통달하려고 한다면 이러한 사람들은 오히려 단순하게 성경 말씀을 믿는 사람보다 영의 세계에는 들어가기가 훨씬 어려울 것입니다.

요3:3에서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가 없다고 했으며 요3:5에서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고전 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빌2:12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라고 했으며 히6:4~6에서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는 다시 회개할 수 없다고 했으며 히10:26~27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이 모든 말씀은 종교적인 신자들이 아닌 거듭난 자들에게 한 말입니다. 성경 말씀대로 거듭난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거듭난 사람은 반드시 그 변화된 성품에 합당한 순종과 행함이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어느 시점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걸어가야 할 기나긴 과정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의 좁은 문을 통과한 후에도 자기를 부인하며 맡겨진 십자가를 지고 험난한 좁은 길을 계속 가야 합니다.

이러한 어렵고 힘든 고난의 긴 성화의 과정을 밟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자가 마지막에는 천국의 영화로움에 도달할 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천국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할 것이 아니요. 우리의 마음속에 있다고 했습니다. 즉 내 마음속에 천국을 이루어가야 이러한 변화된 성품으로 궁극적 천국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예수님을 나의 주와 구주로 삼고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아 내 마음 밭이 변화됨이 없다면 우리 영혼이 이 땅을 떠날 때 갑자기 천국에 가서 거기에 합당하게 변화되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의 삶이 너무나 힘들고 고난의 길이라 할지라도 오직 천성만 바라보며 묵묵히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걸어갈 때 언젠가 우리에게 영원한 하늘나라가 약속되며 거기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하는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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